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에 따라 조기 대통령 선거가 이뤄지면서 개헌 논의도 불붙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전날에 이어 7일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조기 대선과 동시에 개헌 투표를 하자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개헌은 필요하지만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우 의장이 내놓은 ‘대선-개헌 동시 투표’ 제안을 거부하자 다시 입장 표명을 한 것이다. 우 의장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로 국가적 혼란은 일단락됐으나 대통령 중심의 제왕적 권력 구조에 변화가 없다면 극단적 정쟁 소지가 여전하다며 이 같은 제안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드러난 ‘1987년 체제’의 한계로 헌법개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1987년 9월 7일 국회에서 이재형 국회의장(가운데)과 민주당 김현규, 민정당 이대순, 국민당 양정규, 신민당 정재원 4당 총무가 개헌공동발의 연기에 따른 대책을 협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실 개헌 논의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적 한계와 권력 집중에 따른 폐해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여대야소 때는 정부·여당의 일방통행식 정치로, 여소야대에서는 거야의 입법 독주와 국정 발목잡기로 의회 민주주의에 제동이 걸렸다. 그럼에도 개헌은 정략적 셈법에 가로막혀 무산됐다. 이번에도 각 정당과 대선 후보자 입장이 달라 논의가 진척될 지 의문스럽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는 개헌안을 마련해 대통령 선거일에 함께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에서는 개헌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지금은 적기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라며 개헌론에 거리를 뒀다. 다만 김부겸 전 총리,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민주당 비명계 주자들은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를 향해 개헌에 관한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다.

개헌 논의는 정략적 접근이 아니라 국가 미래를 중심에 두고 진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권력 구조 개편에만 집중된다면 개헌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되기 전 제정돼 지방자치 현실과 지향성을 담아내지 못했다. 개헌을 한다면 분권형 대통령제와 함께 지방분권 강화를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수도권 집중과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고 국민 모두가 공정한 혜택을 누릴 기반을 다질 수 있다. 지방정부 권한을 강화하며 자치권 범위를 확대하는 등 다뤄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를 위해선 각 시·도 의견을 수렴해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문제는 6월 3일 대통령선거와 개헌 투표를 동시에 치르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 의장은 이날 정치권이 합의 가능한 부분만 추려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강조했다. 이 경우 지방분권 논의는 미뤄질 우려가 있다. 저출생 고령화 등 우리 사회 구조적 위기를 해결하려면 개헌 논의가 권력구조 개편에 그쳐서는 안 된다. 대선 후보들이 지방분권을 포함해 포괄적인 개헌안을 내놓는다면 이를 충분히 논의한 뒤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를 하는 방안도 있다. 개헌은 권력구조 변화를 넘어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진행하는 게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