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말 가운데는 ‘악성’(惡性)이라는 것이 있다. 결코 좋은 뜻이 아니길래 되도록 사용되지 않는 게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근데 최근에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주택에 이 단어가 붙어 다닌다. 이른바 ‘악성 미분양 주택’이다. 공사가 모두 끝난 뒤에도 팔리지 않아 골칫거리로 전락한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을 일컫는다. 집을 지은 건설사를 압박할 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 같은 부정적인 수식어가 붙었다.
악성 미분양이란 용어가 단순한 말장난 수준에서 쓰인다면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이제는 거의 상용 어구가 되다시피 했다. 준공 후에도 살 사람을 찾지 못한 아파트가 지금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치는 까닭이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올해 1월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2872가구로 집계됐다. 2013년 10월(2만3306가구) 이후 11년 3개월 만에 규모가 가장 크다. 게다가 2023년 8월부터 18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간다. 단순 미분양 주택도 7만2624가구나 된다.
비수도권은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의 80%는 지방에서 발생했다. 물량의 대부분이 비수도권에 몰려 있는 셈이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1월을 기준으로 할 때 부산지역에서 공사 이후에도 팔리지 않는 주택은 2268가구로 조사됐다.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12월(1886가구)보다 20.3% 늘면서 기록을 한 달 만에 경신했다. 이 수치가 2000가구 이상이 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지역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023년까지만 해도 1000가구 아래였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1년 내내 1000가구를 웃돌더니 올해에는 2000가구까지 넘어 버렸다.
악성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미분양 주택이 양산되는 것도 우려할 만하다. 1월 부산지역의 미분양 주택은 4526가구로 지난해 12월(4720가구)보다 4.1% 줄었으나 여전히 많다. 전국 17개 시·도를 비교하면 경기(1만5135가구), 대구(8742가구), 경북(6913가구), 경남(5203가구)에 이어 다섯 번째다. 이러니 부산의 부동산시장 앞날이 어두운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악재가 몰려 가뜩이나 지역 경제가 살얼음판을 걷는 터에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2월 19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민생경제 점검회의에서는 지방 미분양 주택 해소가 논의의 핵심 주제가 됐다. 정부는 우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3000가구를 우선 매입하도록 한다. 이에 LH는 전담 조직을 만들어 가동하는 한편 구체적인 매입 기준 수립, 이른 시일 내 매입 공고 고시 등을 할 예정이다. 또 정부는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상반기 중 지방에서 분양되지 않은 주택을 매입·운영하는 CR 리츠 출시를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금리구조도 손질해 갈수록 침체되고 있는 지방 부동산 경기의 반등을 꾀한다. 특히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면 무주택 서민의 안정된 주거 여건 확보를 위해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인 주택도시기금의 대출 금리를 현재보다 0.2%포인트 내린다. 더불어 수도권의 구입(디딤돌) 및 전세자금(버팀목) 대출 금리를 올리지만 지방은 현재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 대상에서 제외한다. 개편된 제도의 적용 시기는 오는 24일부터다.
부산 등 지역사회에서는 일단 이런 정부 정책에 환영의 뜻을 나타낸다.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개입이 있어야만 문제 해결이 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정책이 얼마나 효율성을 갖고 있을지를 보장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이다.
LH의 지방 미분양 주택 매입만 해도 그렇다. 목표치 3000가구는 그동안 업계 등에서 요구해 온 수치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하향 조정 등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여권 등에서 주장해온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도 사실상 수용 불가로 결론이 났다.
지방 미분양 주택 급증을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노력을 애써 무시할 수는 없다.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불안한 민심을 잠재우고자, 당장 급한 불을 끄고자 보기에 그럴싸한 정책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지방 경기 활성화에서 비롯되는 국토 균형발전이 이뤄지려면 철저한 분석에서 나온 효과적인 방안이 적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굵직한 대책을 잇달아 내놨음에도 예상과 달리 시장의 반응이 싸늘한 이유를 정부는 곰곰이 짚어봐야 한다.
염창현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