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3월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연합군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게슈타포 본부를 공습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게슈타포는 나치 독일 정권의 비밀국가경찰이다. 당시 전투기 한 대가 대공포를 피해 저공비행하다가 수녀원 학교에 추락하자 폭격기들이 이를 게슈타포 기지로 오인해 폭탄을 투하했다. 목표물을 잘못 인식한 오폭으로 86명의 어린이와 교사가 사망했다. 전쟁 중 수많은 비극이 존재하나 오인공격으로 아이들이 대거 학살된 대표적 사건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옛 유고슬라비아 국가 중 한 곳인 세르비아를 지난해 5월 국빈 방문했다. 당시 그는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 폭격 사건을 잊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민간인 학살과 인종청소까지 자행된 유고슬라비아 내전은 20세기 역사상 최악의 내전이다. 이중 1998년 발생한 코소보 내전은 미중 관계를 악화시켰다. 전쟁에 개입한 미군이 1999년 5월 7일 유고슬라비아군 시설로 발사한 합동직격탄이 중국 대사관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인 3명, 세르비아인 14명이 사망했다. 미국은 즉각 ‘오폭’이라고 발표했으나 정치적 음모론이 대두됐다. 중국 내에선 대대적인 반전 시위가 일어났다.

이처럼 첨단 전투장비가 부족했던 과거에는 전쟁 중 오발이나 오폭이 잦았다. 그런데 급박한 전쟁터도 아니고 평상시 훈련 중 민가를 덮치는 오폭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6일 한미연합훈련 중 공군 전투기 2대가 경기도 포천 민가에 폭탄 8발을 떨어뜨렸다. 공군은 조종사가 타격 지점 좌표를 잘못 입력한 탓이라고 밝혔다. 실전 훈련 중인데 좌표 입력 오류를 누구도 잡아내지 못했다. 조종사는 폭탄 투하 지점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어이없는 사고로 군인 12명, 민간인 17명 등 29명이 다쳤다. 폭탄이 떨어진 민가는 지붕이 파괴되고 천장이 무너져내렸다고 한다. 민가 피해가 140채가 넘었다. 정부는 이곳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일어나선 안 될 사고다. 사후 대처는 더 엉망이다. 무엇보다 군당국이 이번 사고를 뒤늦게 파악한 데다 군 최고 지휘부에 보고하는 데까지 30분 이상이 걸렸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방부에서 보고받은 것은 사고 1시간이 지난 뒤였다. 북한의 포격으로 대규모 민간 피해가 발생한다면 군이 제대로 대응할지 등골이 서늘하다는 국민이 많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군 지휘체계 공백이 이어지면서 군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사고 원인을 면밀하게 조사한 뒤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