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겨울나무에서 배워라

정일근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 정일근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  |   입력 : 2025-01-14 18:09:58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묵언하며 걷기 시작한 겨울나무들이 소한(小寒)에서 대한(大寒)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새해 새 희망이 사라진 2025년 1월이 직립한 나무와 숲과 함께 겨울의 내부로 숨어듭니다. 간난(艱難)한 겨우살이는 점점 더 추워질 것 같습니다. 계절이 빈 손 빈 몸의 겨울나무에나, 동안거에 든 산사 수좌(首座)에게나, 저에게나 짙은 먹빛이 주는 느낌과 비슷하게 다가옵니다. 다들 깨달음을 구하는 자세지만 이 시대는 명쾌한 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강물이 강을 버려야 바다에 닿듯이, 일찍 자신의 잎을 모두 다 떠나보내고 침묵 선정(禪定)에 든 겨울나무는 세상이 보기 싫어 면벽한 산사의 수좌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겨울나무의 색은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튼 침묵의 색깔입니다. 그 침묵의 무게가 제 마음 밑바닥까지 묵직하게 내려앉습니다. 말로써 찾아갈 수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침묵 안에, 나무가 가르쳐주는 피안(彼岸)이 웅크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무거워진 만큼 가벼워지는 깨달음 같은 답이 있을 것입니다만 오리무중의 미궁에 답답합니다.

나무와 잎의 작별은 해마다 되풀이됩니다. 저에게는 나무의 침묵이 해마다 더욱 무겁게 느껴집니다. 이때쯤 북쪽에서 불기 시작하는 된바람은 나무를 탄주하는 하늘의 차가운 손이 됩니다. 윙, 윙, 윙 나무가 울면 바람이 따라 웁니다. 마침내 큰 산이 대책 없이 우는 저녁이 오면 외로운 사람들은 나무를 찾아가는 바람이나 폭설이 됩니다. 첫눈이 오든가 첫얼음이 어는 시간과 함께, 1월이 깊어 갈 것입니다.

지역 출신의 아동문학가 동원 이원수(1911~1981) 선생의 명작 ‘겨울나무’를 조용조용 읊조려 봅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겨울나무를 관조한 4행의 이 동시는 저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불가의 진언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은 ‘아미타불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중생의 염원입니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곧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불법을 설하는 부처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지만 죽어서는 극락에 가겠다는 가난하고 춥고 배고픈 민초의 꿈이 저 진언에 따뜻하게 담겨있습니다.

현실은 사람보다 나무가 극락 가기 쉬울 것입니다. 나무의 일생은 자신을 몽땅 다 내주는 거룩한 공양이지 않습니까. 배부른 사람이 오체투지로 닿을 수 없는 거룩한 부처의 시간을 찾아가는 수행을 나무는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유를 말하라면 ‘나무아미타불’에서 ‘나무’는 돌아가고 싶다는 범어(梵語)의 뜻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돌아가고 싶다는 ‘나무’는 ‘南無’(남무)라 쓰고 ‘나무’라 읽습니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56억7000만 년 뒤에 올 미래불인 미륵은 용화수나무 아래에 앉아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무 아래에서 성불은, 불가의 가르침이 나무와 연관이 있다고 저는 겨울나무들을 보며 생각합니다.

그대, 나무 아래 편안히 앉거나 나무와 같이 당당하게 서보길 권합니다. 나무가 읽어주는 시가 있어, 그 시를 두 귀로 듣는다면 나무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발이 없는 나무가 걸어가는 곳, 그곳이 아미타불의 나라일 수도 있고, 행복의 나라일 것이라 믿습니다.

나무에서 배워야 합니다. 나무는 위대한 인문 경전이며 철학 설법입니다. 나무가 가르침이라면 숲은 위대한 도량입니다. 나무에서 배우고 숲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겨울이 혹독할수록 나무와 함께한다면 누구든 새잎 피우는 희망찬 봄이 빠르게 찾아올 것입니다. 다 함께 나무의 노래를 듣고 나무의 노래를 부릅시다. 나무는 가르쳐주고 데려다줄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고 원하는 그 나라로.

동원 선생의 겨울나무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평생을 살아 봐도 늘 한자리/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꽃 피던 봄 여름 생각하면서/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인생은 결국 한 자리지만 꽃 피고 열매 맺는 시간이 오면 이 시간이 매우 부끄러울 것입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조경태, 9일 봉하마을서 盧 참배…與 사하을 기초의원들 “복당 반대”
  2. 2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3. 3양산선 개통 코앞인데…인력 충원 없다
  4. 4성장이냐 쇠퇴냐…부산이란 도시 운명은 이것에 달렸다
  5. 5부산 복덩이 ‘부캉이’ 대선소주 모델됐다(종합)
  6. 6전재수 “2028년 G20 정상회의 유치 도전”(종합)
  7. 7부산이 대륙 끝? 지도 돌려보면 북극항로 시작점
  8. 8김희정 의원 ‘대주주 회생동의 촉구’ 국제신문 농성장 찾아 응원
  9. 9골목길 외국어로만 채운 간판 15개…위법입니다
  10. 10AG 4개의 金 호령한 바다의 왕자…“다음은 올림픽 포디움”
  1. 1조경태, 9일 봉하마을서 盧 참배…與 사하을 기초의원들 “복당 반대”
  2. 2김희정 의원 ‘대주주 회생동의 촉구’ 국제신문 농성장 찾아 응원
  3. 3부산 기관장 후보 김태호·김명수, 시의회 인사청문서 부적격 판정(종합)
  4. 4李대통령 “능력 안되면서 큰자리 요구하다 안 되니 내부 공격”
  5. 5“여야 협치로 市 조직개편·추경 성과…다음은 민생·PK 초광역”
  6. 6‘정청래 비자 보류’에 민주당은 유감…국힘 “한미동맹 균열”
  7. 7이 대통령 지지율 직전과 같은 37%…민주당 35%, 국민의힘 26%
  8. 8李대통령 “우리 말과 글의 힘이 곧 대한민국의 경쟁력”
  9. 9박형준, 퇴임 후 첫 공개 행보… 총선엔 “아직 생각 없다”
  10. 10인천 해수욕장서 北유실지뢰 54일만에 또 발견.. "안전 유의"
  1. 1부산 복덩이 ‘부캉이’ 대선소주 모델됐다(종합)
  2. 2전재수 “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조속 통과…소급적용도 추진”
  3. 3산은 회장 “통합 LCC 본사 부산행 결정 땐 적극 지원”
  4. 4부산 찾은 외국인 올 1~8월 343만 명 돌파…프랑스 관광객 작년보다 111%↑
  5. 5[뉴스 분석] 수도권, 가덕신공항 또 트집…국책사업 발목 자성 촉구 목소리(종합)
  6. 6태웅, 1년 갈등 ‘봉합’…노사정 상생협약 체결
  7. 7‘극지해양 독후감’ 공모전 대상 고등부 김세형, 대학·일반부 하웅 씨
  8. 8부산항 오는 배 위치 실시간 확인
  9. 9지자체 ‘비상금’ 3년새 반토막…국고사업 매칭비는 23% 늘어(종합)
  10. 10[증시와이드] 실적 유지·턴어라운드 종목 선별 접근을
  1. 1양산선 개통 코앞인데…인력 충원 없다
  2. 2전재수 “2028년 G20 정상회의 유치 도전”(종합)
  3. 3골목길 외국어로만 채운 간판 15개…위법입니다
  4. 4동백전 캐시백 상향해 상권 온기…부산형 청년사다리 박차
  5. 5김영광, 보복 운전 사과 “운전 습관 돌아보겠다”
  6. 6김척수 구청장 후보자 수사 7개월째 표류
  7. 7특혜 논란에도…엘시티 투자이민제 13년 실적 고작 2건
  8. 8“크루즈 관광객 동선, 부산항서 이바구길까지 넓힐 것”
  9. 9부산 동백중 교사와 학생 “우리는 와플처럼 달콤한 사이”
  10. 10박완수, 우주항공·SMR 기반 메가 특구 공들여
  1. 1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2. 2AG 4개의 金 호령한 바다의 왕자…“다음은 올림픽 포디움”
  3. 3김영광, 보복 운전 사과 “운전 습관 돌아보겠다”
  4. 4막 오른 ‘HJ중공업·동부건설 챔피언십’…최예본·한아름 공동 선두
  5. 5가을야구 못간 롯데 자이언츠, 정규시즌 3위 승부처돼 난감
  6. 6“핸드볼 8년 만의 아시안게임 金…맏언니로서 기뻐”
  7. 7SON A매치 최다골 대기록에도…뒤숭숭한 韓축구
  8. 8하현승, 계약금 16억에 키움 입단
  9. 9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10. 10롯데, KIA에 4-12 패…8회 7실점 ‘와르르’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국제칼럼 [전체보기]
누구도 법 앞에 국민보다 ‘더 평등’할 수 없다
배지의 실력행사
기고 [전체보기]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배우 한선화
유튜브 쇼츠 정치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삼전 영업익 107조 시대…미래기금 지방우대 필요하다
‘부캉이 열풍’이 던진 부산관광 활성화의 과제
세상읽기 [전체보기]
빚을 물려받는 사회
부자(富者)가 되고 싶다면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무(武)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