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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난장] 독감이 아니라 인플루엔자

정확한 명칭 사용으로 예방·치료 중요성 전파

감염병 올바르게 인식, 공중보건 향상에 기여

신승건 부산 연제구보건소장

  • 신승건 부산 연제구보건소장
  •  |   입력 : 2025-01-09 18:31:19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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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인플루엔자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평소 건강하던 지인들도 목소리가 잠긴 채 고열로 고생하고 있다. 마스크 위로 비친 퀭한 눈빛 너머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낼지 생각만 해도 안타깝다. 밤새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체온을 보며 여러 번 잠을 설치는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무거워진다. 기침으로 부은 목구멍 때문에 밥 한 숟갈조차 넘기기 힘겨워 죽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진 않았을지.

인플루엔자 환자 급증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6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달 22일부터 28일까지 국내 외래 환자 1000명당 인플루엔자 의심 환자는 73.9명으로, 3주 만에 10배 이상 급증했다. 이는 2016년 이후 8년 만에 최고치다. 질병관리청이 전국 220곳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입원 환자 감시에서도 인플루엔자 입원 환자가 일주일 새 403명에서 834명으로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병 대응과 예방접종을 중요한 업무로 하는 보건소의 직원으로서, 인플루엔자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일지, 그리고 이 유행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없을지 늘 고민하게 된다. 특히 인플루엔자라는 질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인플루엔자를 흔히 독감이라고 부르는 관행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짓는 사회적 행위라고 보았다. 저서 ‘철학적 탐구’에서 그는 ‘언어 놀이’라는 개념을 통해 단어의 의미가 사용되는 방식과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즉, 언어는 단순히 세계를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독감은 ‘독한 감기’라는 뜻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인플루엔자를 감기의 일종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인플루엔자는 감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질병이다. 인플루엔자는 감기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감기는 비교적 가벼운 상기도 감염으로 분류되지만, 인플루엔자는 전신적인 증상과 함께 고열, 근육통, 그리고 폐렴과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들이 독감이라는 용어를 통해 인플루엔자를 독한 감기로 오해한다면, 이는 예방접종을 소홀히 하거나 감염 초기에 항바이러스제 복용 등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독감 대신 인플루엔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의 심각성을 올바르게 인식하게 만드는 중요한 언어적 실천인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다소 회의적이다. 네이버 데이터랩(Naver Datalab)을 통해 인플루엔자 유행이 본격화된 지난 한 달 동안의 검색어 사용 빈도를 분석해 보니 ‘독감’은 ‘인플루엔자’보다 약 14배 더 많이 사용되었다. 심지어 ‘독감 예방접종’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에 비해 약 50배 넘게 검색되었다. 사람들이 인플루엔자보다 독감이라는 단어를 익숙하게 여기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언론은 과연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분석 플랫폼 빅카인즈(Big Kinds)로 조사해 보니, 2024년 한 해 동안 제목에 ‘독감’이 들어간 기사는 486건으로, ‘인플루엔자’를 쓴 기사 305건보다 60% 정도 많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이 될 수도 있겠으나, 언론 보도가 독감이라는 용어를 더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은 사람들의 언어 사용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독자들이 접하는 기사 제목에서 독감 대신 인플루엔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질병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한다. 오랜 기간 독감이라는 단어가 익숙하게 사용되어 왔지만, 언론 보도에서 정확한 용어를 사용한다면 독자들의 혼란을 줄이며 예방과 치료의 중요성을 더욱 분명히 전달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인플루엔자 관련 기사에서 정확한 용어와 함께 질병의 심각성 및 예방 방법을 강조한다면, 독자들에게 더 나은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이는 공중보건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의 행동에 미치는 언어의 영향은 때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독감 대신 인플루엔자라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질병의 호칭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촉진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언론과 의료계가 협력하여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간다면, 사람들의 건강을 보호하고 공중보건을 한층 더 강화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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