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앙로즈’. 장밋빛 인생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에디트 피아프가 1947년에 부른 샹송 제목으로 알려졌다. 2007년에는 올리비에 다한 감독이 그녀의 일생을 담아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흔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면을 비유할 때 주로 사용한다. 논란이 커지는 부산 거점 항공사에 대한 시 입장에 ‘장밋빛 인생’이 떠올랐다. 근거가 불확실한 낙관론으로 가득 차서다. 다음은 시 고위 인사와 나눈 대화 일부다.
그는 “통합LCC의 명칭은 ‘에어부산’, ‘본사는 부산’이 시 입장”이라고 했다. “대한항공도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판단의 근거가 궁금했다. 그는 “대한항공에도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은 이미 인천공항을 거점으로 한다. 통합LCC 거점을 가덕도신공항으로 두면 대한항공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항공사에 가덕도신공항이 선점되면 대한항공으로서는 장기적으로 가덕도신공항을 이용하는 물류나 여객에서 뒤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영 터무니없는 논리로 들리지 않았다. 대한항공과 물밑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마저 들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 그는 “부산이 강력하게 요구해 관철할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게 만들 것이다”고 했다. 갑자기 김이 샜다. 어떤 교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분히 희망이 담긴 말로 해석됐다.
그래도 그의 바람대로 통합LCC가 부산에서 날개를 펴면 더 바랄 게 없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은 마무리 수순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양사 기업 결합을 승인했다. 대한항공은 2021년 1월 기업결합을 신고한 14개 ‘필수 신고국’ 중 미국을 제외한 13개국의 승인을 모두 받았다. 미국 법무부(DOJ)도 조만간 승인 결정을 내릴 것으로 관측된다. DOJ는 다른 나라 경쟁당국과 달리 기업결합 승인 여부를 공표하지 않는다. 대신 승인하지 않을 때만 독과점 소송을 제기해 의사를 표명한다. 대한항공은 독과점 우려를 해소해 유럽연합 집행위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은 만큼 DOJ가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한항공은 이번 달 중 기업결합 절차를 최종 완료한다.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입하는 것이다. 이후 2년간의 독립 운영 기간을 두고 마일리지 통합 등의 화학적 결합을 진행한다.
에어부산은 어떻게 될까. 통합LCC가 에어부산이라는 명칭으로 부산에 있을지, 지역 상공계 요구대로 분리 매각될 지는 현재로선 낙관적이지 않다. 대한항공은 자회사인 진에어가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을 흡수해 인천공항에서 통합LCC를 이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부산 전체 입장도 정리되지 않았다. 시 일각서는 ‘분리 매각’ 요구에 지역 상공계의 비즈니스가 개입됐다고 의심한다. 정치권 일부는 “어떤 형태든 동남권 시·도민이 편리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에어부산이 대한항공 자회사로 남으면 안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거점 항공사’ 문제를 놓고 시 인사의 희망과 다르게 펼쳐지는 현실은 ‘데자뷔’다. 1년 전 부산은 ‘2030 엑스포’ 유치로 들끓었다. 그때도 시 인사들은 “1차 투표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과반을 득표할 수 없다”는 등의 말을 반복했다. 다른 의견은 모르고 하는 얘기로 치부됐다. 결과는 다시 언급하기도 부끄러운 참패로 끝났다.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도 다르지 않다. “21대 국회 회기 중에 성과를 내겠다”고 했다. 22대 국회가 들어서고 6개월이 지난 현재. 여전히 이들 현안을 놓고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부산 현안을 막는 이유로 꼬리표처럼 붙이는 야당 등의 반대는 ‘상수’였다. 추진 단계부터 예견됐던 일 아닌가.
영화 ‘라비앙로즈’에서 주인공은 스타가 되어 부와 명성을 얻지만,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장미는 양면성을 가진 꽃이다. 화려한 모양과 향기를 품었지만, 날카로운 가시를 동시에 지닌다. 가덕도신공항을 거점으로 세계로 뻗어가는 항공사 설립은 지역민의 소망이다. 가시를 제거하는 전략적 접근을 기대한다. 시가 바라는 그림은 ‘낙관론’만으로 현실이 되지 않는다.
박태우 서울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