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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검투사를 치료한 로마 제국 의사 갈레노스

정승규 약사

  • 정승규 약사
  •  |   입력 : 2024-11-24 19:24:1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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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전차 경주, 검투사 경기는 고대 로마사람들이 즐긴 대표적인 구경거리였다. 그중 날카로운 무기를 들고 원형경기장에서 생명을 걸고 벌인 검투사(글래디에이터)들의 피 튀기는 싸움은 당시 최고의 볼거리였다. 위로는 황제부터 시작해 원로원 귀족, 로마 시민 그리고 하층민까지 한곳에 모여 함께 손에 땀을 쥐며 치열하고 잔혹한 전투를 관람했다.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화려하고 큰 경기에는 엄청난 인기와 돈이 걸려있기 마련이다. 흥행의 핵심 요소는 싸움 잘하는 검투사들이 경기에서 맹활약하는 것이었다. 엄격한 훈련을 통해 검투사를 양성하는 감독관은 기량이 뛰어나고 전도유망한 검투사를 선별하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검투사의 능력은 신체조건, 전투 실력, 승부 근성 그리고 출신 지역에도 영향을 받았다. 로마군과의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고향에서 끌려와 검투사가 된 경우가 많아 지역에 따라 뚜렷한 특성이 나타났다. 사막이 있는 중동 출신은 기동력은 뛰어났으나 좁은 공간에서 일대일로 대결하는 싸움에는 약했다. 산악 지형이 많은 스페인 출신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법에 능했지만, 공개적으로 맞붙는 경기장에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에 반해 지금의 불가리아, 루마니아 지역을 지칭하는 다키아와 트라키아 출신 검투사들이 인기가 많았다. 그들은 체격이 단단하고, 뛰어난 검술로 재능을 뽐냈다. 갈리아라고 불린 프랑스, 브리타니아로 불린 영국 출신들도 선호했다. 키가 크고 근육이 많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있어서 로마인에게 강인한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검투사는 전쟁 포로 외에도 살인 방화 반란을 일으킨 범죄자도 있었고 자유민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자원해서 뛰어든 사람도 있었다. 흥미를 돋우기 위해 가끔 여자 검투사 경기도 열렸다. 특이하고 희소한 여자 검투사 경기는 남자 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생과 사의 순간을 넘나드는 검투사들은 크고 작은 부상에 노출되었고 그들을 치료할 의사가 필요했다. 서기 2세기경 활동한 갈레노스는 로마 제국을 대표하는 의사였다. 그는 검투사 양성소에서 일하며 경기 중 다친 검투사들을 돌봤다. 그곳에서 갈레노스는 외상 치료와 인체 해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쌓을 수 있었다. 그는 상처에 붕대를 감고 베인 상처를 봉합하는 데 능숙했다. 뛰어난 의술로 갈레노스는 ‘명상록’을 써 철인 황제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그의 포악한 아들 코모두스 황제의 주치의가 되었다. 황실 주치의가 된 갈레노스는 의학이론을 발전시키고 다양한 저술을 남길 기회를 얻었다.

로마 의학의 핵심은 두 가지다. 병에 걸리는 원리를 설명하는 4기질설과 병을 치료하는 약초에 대한 탐구다. 갈레노스는 기원전 그리스 자연철학에서 유래한 4원소설과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을 결합해 체질을 설명하는 4기질설을 주장했다. 그는 몸속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균형이 무너지면 질병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관점으로는 황당하지만, 갈레노스의 저술은 의학 교육의 주요 교재로 사용되었다. 그의 이론은 중세 기독교 교리와 결합해 교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무려 1400년 동안 서양과 이슬람 의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불변의 진리처럼 신봉한 갈레노스의 의학이론은 근대에 와서 부정되었다. 종교계에서 반대한 인체 해부가 가능해지면서 의학이 발전해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이 급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중 혈액의 이동을 설명한 영국 의사 윌리엄 하비의 혈액순환 원리는 약물 치료에 신기원을 열었다. 정맥에 약을 투여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오류에도 불구하고 갈레노스의 의학은 인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복잡한 생명현상을 나름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고대 의학을 통합하고 정리한 갈레노스가 남긴 발자취는 검투사를 통해 가능했다. 원형경기장에서 분투한 검투사들의 희생이 바탕이 된 것이다. 의학을 비롯한 과학의 발전은 수많은 사람의 시행착오와 헌신이 있었기에 성취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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