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주가가 10만 원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정반대로 5만 원대로 밀렸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개발 실패, PC용 메모리 반도체(DDR4) 및 낸드플래시에서 중국 기업의 추격을 허용하고 시스템반도체에서의 대규모 적자 등이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어서다.
어쩌다 삼성전자가 이렇게 되었을까? 이재용 회장이 사법리스크로 경영 몰입력이 떨어진 것이 한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삼성전자가 스스로 파 놓은 함정이 더 큰 이유다. 변화 감지력을 약화시키고, 기존을 뛰어넘는 창의력을 방해하는 조직문화가 가장 큰 문제다.
삼성전자는 TV 등 전자제품이나 표준 메모리반도체와 같은 성숙기 산업에 진입해 선발 기업을 따라잡으며 성공한 기업이다. 이로 인해 성숙기 경쟁에 유리한 공식화된 규칙, 엄격한 규율, 상명하복, 원가를 강조하는 문화가 생겼다.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관리의 삼성’이다. 이 문화는 성숙기 사업에서의 가격 치킨게임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유연성과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사업에서는 정반대 효과가 나타난다. 시스템반도체가 예다. 이 사업에는 설계적 창의성과 고객사의 다양한 요구를 유연하게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관리문화’는 이런 역량을 죽이는 역기능이 있다. 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삼성전자는 메모리 사업에서 성장한 관리형 인사들을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대거 투입했다. 그 결과 고도의 유연성과 창의성이 필요한 이 사업을 빈사 상태로 만들게 된다. HBM사업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HBM은 표준품인 기존 메모리와 달리 고객사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들어주어야 하는 사업이다. 관리문화가 이것을 철저히 방해했다.
관리문화의 또 다른 역기능은 ‘왜’라는 질문을 질식시키는 것이다. 삼성전자에서는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할수록 승진이 어렵다. 상사가 말하는 것에 복종하지 않는 태도로 비치기 때문이다. ‘왜’가 없으니 당연히 제대로 된 토론도 없다. 입을 닫고 살아야 하는 문화다. 이런 문화는 시스템반도체처럼 항상 새로운 답을 구하거나 HBM처럼 고객사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해야 하는 사업에 매우 불리하다.
관리문화의 역기능은 숫자경영으로도 나타난다. 관리에 능한 경영자들은 숫자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다. 숫자경영은 미래의 잠재적 기회를 보지 못하게 하는 위험이 있다. 미래의 기회는 불확실성과 리스크로 가득 차 있어 성과를 숫자로 나타내기 어렵다. 그럼에도, 사업성과를 숫자로 보고하라고 압박하면 구성원들은 리스크가 낮은 사업만 찾고, 경영성과를 가시화하기 어려운 기회포착형 사업에는 눈길을 주지 않게 된다. HBM은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보다 먼저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 성과가 숫자로 가시화되지 못하자 삼성전자는 이 사업을 일찌감치 접어 버렸다. 그 결과 후발주자인 SK하이닉스에게 기술에서 밀리는 참극이 일어났다. 숫자가 미래를 보는 눈을 가려서다.
관리문화는 비선형적 창의성을 만들어 낼 수 없는 문제도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7나노, 5나노, 3나노, 2나노 공정처럼 다음 단계가 보이는 기술개발에 탁월하다. 이런 기술을 선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관리문화는 기존 기술의 연장선과 다른 궤적을 갖는 비선형적 기술개발에는 불리하다. AI 시대가 오자 관리문화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표준 반도체가 아닌 비표준 반도체(비선형적 기술)인 시스템반도체와 HBM을 생산해야 하는 상황에 삼성전자가 놓인 것이다. 또 다른 문제도 드러났다. 삼성전자는 7나노 이상의 공정에서는 쉽게 수율을 잡았다. 하지만 5나노 이하의 초미세 공정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수율을 잡는 과정이 매우 복잡해져 기존과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기술의 비선형성이 높아져서다. 관리문화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삼성전자의 관리문화가 뒤틀리는 일도 벌어졌다. 채용 방식의 변화 때문이다. 삼성은 신규인력 채용 방법으로 공채를 오랜 기간 채택했다. 이 방식은 신입사원을 훈련해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우직하고 충성심 높은 직원을 길러낼 수 있었다. 이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성실하게 성과를 만들어 냈다. 이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공채를 줄이고 경력사원 채용을 늘렸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직원들을 채용해 기술력과 창의력을 높이려는 의도에서다. 문제는 관리에 매몰된 삼성전자 문화가 이들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했다. 그러자 삼성문화에 겉도는 직원이 늘었다. 실망한 직원이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빈도도 늘었다. 이런 악성문화가 삼성전자 내부에 퍼지면서 직원 중 일부는 중국기업으로 건너갔다. 기술 유출 속도도 가속화되었다. 그렇게 중국의 반도체 경쟁기업을 키웠다.
삼성전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자명하다. 더는, 성숙기 산업용 관리문화에 몰두해서는 안 된다. 시스템반도체 및 AI 반도체와 같은 성장기 산업에서 생존력을 높일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구성원의 창의성과 유기적 협력을 자극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을 얼마나 빨리 구축할 수 있는가가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