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이 ‘유튜브’라는 조사 결과가 보도됐다. 한국인 88%가 유튜브를 이용하고, 10대 남성은 한 달에 무려 56시간을 본다는 통계 자료도 있었다. 그런데 텍스트에 대한 수요도 조금 늘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정해진 시간 동안 책을 읽고 가는 공간이나 모임이 전 세계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청년의 소리’에서도 젊은 세대들의 ‘텍스트힙’ 문화와 쓰기 열풍에 대한 글이 이미 여러 번 실리기도 했다. 2030세대 중심으로 종이책 읽기가 유행인 것은 숏폼과 같은 자극적인 콘텐츠에 지쳤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장 지배적인데, 도서관이나 지역 서점, 독서 클럽 등을 찾는 젊은 세대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그런듯하다.
‘책 읽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하나의 이야기와 한 권의 책이 있다. 먼저,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란 무엇인가 1’에 실린 인터뷰에서 가족을 소개하던 에코는 아버지를 ‘끈질기게 책을 찾아다니며 읽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가난했기에 책을 사볼 수 없었던 그의 아버지는 노상 서점에서 서서 책을 읽었고, 주인이 눈치를 주거나 쫓아내면 다른 노점상에 가서 그 다음 부분을 찾아 읽었다. 에코는 이러한 아버지의 끈질긴 읽기를 매우 중요한 이미지로 여기며 살았고, 그것이 자신을 소설가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나 역시 이 글을 읽고 난 후, ‘끈질기게 읽기’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책을 읽기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읽어내는 것. 그것이 진짜 책 읽기의 모습이라고 말이다.
책 읽기에 대한 한 권의 책은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이다. 모든 소설가가 그렇겠지만, 오에 겐자부로는 단어 하나하나를 연구하며 읽고 쓰는 작가다. 그런 자신의 읽기에 대해 소개한 책인데, 책의 목차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신중한 읽기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잠깐 소개하자면, ‘재독(다시 읽기), 치열한 읽기 훈련’을 통해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슬픔과 비탄의 시기를 ‘책으로 버티고, 책으로 구원’받으며, ‘인생의 모든 순간 책’이 있었고, ‘오로지 읽고 쓰는 삶’을 살며, ‘살아갈 날들을 위한 책’을 읽는다. 그의 읽기는 스스로 말했듯 지독했는데, 마음이 움직이는 글을 읽으면 그것이 번역문일 경우 원문을 찾아보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언어 번역본까지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읽어내기까지 한다. 작가가 쓴 단어 하나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오에 겐자부로가 이렇게까지 글을 읽는 여러 이유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바로 ‘전신운동으로서 읽기’다.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작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읽기에 대해 언급하는데, “독서를 하며 얻는 감동, 영감, 지적 흥분은 그 책이 공급하는 정보가 아니라, 책 속의 언어들을 통해 어떤 정신을 발견한 것”이며, 이러한 책 읽기는 전신운동이라고 말한다. 즉, 책 읽기는 고요하지 않고,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의 정신이 살아 움직이며 읽는 이에게 전해지는” 매우 역동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치열하고 끈질긴 책 읽기, 격렬한 전신운동으로서 책 읽기.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은 책 읽기는 도피나 쉼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에세이스트 수전 손택은 “단순하게 만들려는 목소리에 반대”하며 “정신적 약탈자들의 말을 믿지 않게 하는 힘”이라고 했고, 소설가 권정생은 “좋은 글이란 다 읽고 나서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이라고 말했다.
끝없이 나와 타인, 세계를 마주 보게 하며 또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이 글에 있다. ‘텍스트힙’이라는 이름으로 유행처럼, 혹은 몇몇 사람들의 향유 문화로 끝날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행위는 인류를 지탱하는 힘이기에 끝까지 지켜내야만 하는 것이다.
숏폼과 같은 짧은 영상에 삶의 시간을 쓰면 쓸수록, 우리 정신은 쇠약해지고 피폐해진다는 것 역시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 유튜브를 보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책을 읽지 않고 우리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영상 매체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것과 단절되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책을 읽는 이미지를 떠올리자. 전신운동으로서 책 읽기는 우리를 건강하고 충만하게 살도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