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윤동주는 얼마나 오래 별을 바라봤을까

안재철 상지건축부설연구소 연구2본부장

  • 안재철 상지건축부설연구소 연구2본부장
  •  |   입력 : 2024-07-30 18:23:10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7월 29일까지 원고를 부탁드립니다.” 소식을 들으면 머릿속에 작은 기계장치 같은 것이 생겨난다. 일상에 지장 없을 정도의 저전력으로 이 장치는 구동되기 시작한다. 장치가 하는 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에 성급해지면 어설픈 답에 사로잡혀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 기계장치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주변 환경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감응이다.

감응은 건물과 나무로 시작해 바람과 질감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내 오감을 자극하며 머릿속으로 진입하는 각종 도시의 정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직접적인 응답은 하지 않으려 한다. AI처럼 데이터 속 타인의 감응을 학습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장마철 빗방울의 소리보다 먼저 들어온 비 냄새에 뇌신경 하나 반짝 불이 켜지듯, 느리지만 스스로 ‘그륵 그륵’ 성능 나쁜 컴퓨터처럼 느끼고 반응하는 일이다. 자극이 너무 많은 이 도시에서는 저전력으로 움직이는 이 장치가 어쩌면 적합한지도 모른다.

시는 참 쉬워 보인다. 시가 쉬워 보이는 것은 짧은 일상의 단어로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얼마 전 타계한 김민기의 노랫말을 그려보면, 단어들은 새벽 한순간 이슬처럼 노랫말에 맺혔더라도, 오랜 시간, 말 그대로 긴 밤을 지새우며 되새기고 되새긴 마음의 결정체임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시와 연구는 닮아있다. 시는 사랑과 삶을 짧은 글 속에 담아내고, 연구는 우주를 짧은 수식 속에 담아낸다. 좋은 시어는 아침이슬이 풀잎에 맺히듯, 허공에 보이지 않던 물방울이 ‘반짝’ 맺히는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사과나무 밑에서, ‘유레카’가 욕조 속에서 반짝 솟아났다고들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2)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의 일대기를 그렸다. 실비아 나사르의 동명 소설에서는 존 내시가 일한 미국 방산기업 더글러스 항공의 싱크탱크 랜드의 풍경을 소개하는 내용이 있다. 공식적인 세미나와 회의가 없는 랜드는, ‘우연한 만남을 극대화하기 위해’ 안뜰을 중심으로 한 격자구조 공간으로 설계됐는데, 연구자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새로운 연구 결과는 우연한 만남에서 공유됐다. 그 공간은 수학자들의 만남 횟수를 수식으로 만든 수학자에 의해 설계됐다. 존 내시는 종종 이빨에 종이컵을 물고는 공간을 서성거리고 배회하다가 가끔 얄궂은 미소를 머금었다.

많은 생각의 싹은 샤워를 하거나, 운전을 하거나, 버스 차창으로 멍하니 바깥을 바라볼 때 불쑥 솟아나곤 한다. 그래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도, 절대 성급히 컴퓨터 앞에 앉지 않고 그런 공간과 시간을 찾으려 애쓴다. 까탈스러운 머릿속 장치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오래된 나무의 잎들이 재잘거리고, 노천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료들과 우연한 만남이 있다면 더 좋겠다. 하지만 그런 공간과 그런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 숫자나 금액으로 증명돼야만 공간도 시간도 살아남기 때문이다.

시도 연구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바람 좋은 날 버스 차창에 머리를 기대어 멍하니 진동에 몸을 맡기는 듯해도, 머릿속에는 작은 장치가 마침내 신호 하나를 받아들이고 이윽고 폭풍과 같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그런 시간, 그런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 시간은 찰나와 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오랜 기간 머릿속 장치가 저전력으로 환경과 감응한 결과이다.

AI의 유행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오래 봐야 가능하다고 했던 일이 무의미해지고 있는 시대다. 암울했던 시대 한가운데서, 또는 사랑을 하고 고뇌를 하면서 되새기고 되새겨 단어 하나에 마음을 담는 시조차도 AI가 쓸 수 있다고 믿는 세상이다. 과연 그럴까. 김민기 선생의 죽음을 접하면서 하늘을 바라본다. 윤동주는 얼마나 오래 별을 바라봤을까. 김민기는 얼마나 많은 새벽을 맞이했을까.

무용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머릿속 작은 장치는 ‘그륵 그륵’ 별과 새벽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회 마을버스뿐
  3. 3[도청도설] 발가벗겨진 사우디
  4. 4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5. 5[시민기자] ‘핑크 가을’ 내려앉은 대저생태공원
  6. 6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7. 7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8. 8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9. 9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10. 10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1. 1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2. 2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3. 3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4. 4여도 야도 시중은행 연쇄 해킹 사태 집중 질타
  5. 5[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北 적반하장 용납 못해…추가 도발 감행시 단호하게 대응”
  6. 6[2026 국감 브리핑]조경태 “최고 시스템 갖춘 건기연이 가덕도신공항 부지 침하 연구해야”
  7. 7"법령 검토해 결정하겠다"던 김지용 중수청장, 국무회의 참석
  8. 8이 대통령 "관행·절차 얽매이지 말고 주택 공급 전격전 펼치길"
  9. 9통일부. 北 대남확성기 재개 위협에 “문제 해결 노력에 호응” 촉구
  10. 10“통합 진에어, 처음 취지대로 부산 이전해야”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3. 3부산 명물 삼진어묵, 상하이 입맛 잡는다
  4. 4부산 몸집 키우는 해양금융 생태계
  5. 5선원노련 김두영 위원장, ITF(국제운수노련) 집행위 선출
  6. 6이번엔 할리스…고객 개인정보 276만 건 유출(종합)
  7. 7기술유출 엄단…산업부 ‘특사경’ 도입 추진
  8. 8양현재단 20년, 해운·항만 새 항로 모색
  9. 9해양진흥공사, 상임이사 공개 모집
  10. 10노르웨이 북극권 누빈 부산 청소년, 극지경험 공유의 場
  1. 1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회 마을버스뿐
  2. 2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3. 3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4. 4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5. 5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6. 6어린이집 앞 석면지붕 빼곡…소유주들 빈집 등 이유로 방치
  7. 7상습 음주운전 꼼짝마…후 불어야 시동 걸린다
  8. 8주 15시간 넘기면 인건비 30%↑…생존 위해 쪼개기 고용
  9. 9재개발 조합장 수사 정보 채팅방 올린 공무원 벌금
  10. 10“경남 강점 활용한 SMR 특구 만들자”
  1. 1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2. 2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3. 3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4. 4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5. 5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6. 6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7. 7‘통산 최다안타 3위’ 손아섭, 두산에서 방출…선수 생명 이어갈까
  8. 8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 여자 단식 최다우승 기록세워
  9. 9부산시청 고은, 전국체전 金…女사격 비공인 세계신기록
  10. 10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원칙이 흔들린 대가
‘빵과 책’·양자경·강말금 그리고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발가벗겨진 사우디
“난 짜장”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LCC 통합 때 약속한 부산 허브 구축, 정부가 이행하라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무색, 제도적 미비점 보완 시급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