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황정수의 그림산책] 김정헌의 ‘밥이 하늘이다’

황정수 미술평론가

  • 황정수 미술평론가
  •  |   입력 : 2024-07-21 19:08:08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고향집이 있는 마을은 정읍의 ‘황새물’이라 불리는 곳이다. 김제 원평을 이웃하고 있는 이 외진 작은 마을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 1855~1895)이 살던 마을이란 이야기이다. 어느 집이나 그렇듯 집안 어른들은 이 위대한 인물을 자식 교육에 이용하곤 했다. 특히 아버지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 전설을 이야기하곤 하셨다. 괜히 자식의 기를 살려주려 하는 얘기인 줄 알고 무시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학계의 연구 자료를 보다 정말로 이 마을이 실제 전봉준 장군이 젊은 시절 몇 년간 살았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 숙연해진 적이 있다.

김정헌의 ‘밥이 하늘이다’.
고향 정읍 주변엔 늘 종교적 향취가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대찰 금산사가 있고, 증산교의 본산 오리알터 등 여기저기에 종교적 상징물이 널려 있다. 우리 집 주변의 전봉준 장군과 증산 강일순, 보천교 차경석 이야기는 옛 추억을 상기시키는 일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백제시대 이후 호남 지역에 유행한 미륵 사상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했다. 무의식적으로 고향이 내려준 기운은 성장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민족주의를 심어주었고, 훗날 민중적인 문학·미술 등에 경도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사회 현상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가지게 된 것도 고향이 준 기억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 한동안 나를 지배한 것은 1980년대 미술계의 주요한 사건이었던 ‘현실과 발언’ 동인의 등장이었다. 당시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진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미술 운동을 한 일군의 미술가들은 나의 우상 같은 존재였다. 이들의 현실 비판적인 작품 내용은 기존 미술가들과는 다른 마력이 있었다. 이른바 민중미술은 자유에 족쇄를 채운 암울한 시대와 대비되며 마치 살아있는 신화처럼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들의 작품을 볼 때면 신성한 종교적 대상을 대하는 것 같았고, 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현실 비판적 내용은 고향 마을의 미륵 사상처럼 비장한 감을 주었다.

세월이 지나며 ‘현실과 발언’에 참여했던 작가들을 한 사람 두 사람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작품을 대할 때 어떤 구원의 손길을 마주한 듯한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때 마침 우상 같았던 작가 중 한 명인 화가 김정헌(金正憲, 1946~ )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설레는 만남을 뒤로하고 작업실을 방문하고 싶다는 간곡한 애원 끝에 가평 두밀리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마침 선생은 7, 8미터에 이르는 대형 작품 ‘동학농민혁명’을 그리고 있었다. 내 삶을 에워싸고 있는 동학의 그림자가 여기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한동안의 이야기 끝에 작업실 방문 기념으로 작은 그림 한 점을 건네주신다. 아주 작은 나무판에 한 사람이 앉아 밥상을 마주하고 있는 내용이다. ‘밥이 하늘이다’는 제목을 적었다.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이 말한 그 유명한 경구이다. 주인공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인 듯하다. 그날 이후로 책상머리에 두고 마치 부적처럼 바라본다.

코로나19 이후 전국 어느 곳이나 빈 집, 공실이 늘었다. 세상 사람의 삶이 팍팍하다.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지 100년이 훨씬 지났지만, 사회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여전히 ‘밥이 하늘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도청도설] 발가벗겨진 사우디
  3. 3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4. 4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5. 5[시민기자] ‘핑크 가을’ 내려앉은 대저생태공원
  6. 6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7. 7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8. 8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9. 9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10. 10“미래대응기금 조성, 교부세 축소 안 돼”
  1. 1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2. 2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3. 3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4. 4[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北 적반하장 용납 못해…추가 도발 감행시 단호하게 대응”
  5. 5"법령 검토해 결정하겠다"던 김지용 중수청장, 국무회의 참석
  6. 6[2026 국감 브리핑]조경태 “최고 시스템 갖춘 건기연이 가덕도신공항 부지 침하 연구해야”
  7. 7여도 야도 시중은행 연쇄 해킹 사태 집중 질타
  8. 8이 대통령, "생애 첫 연금 지원사업 신청한 사람만? 실질적 불평등"
  9. 9이 대통령 "관행·절차 얽매이지 말고 주택 공급 전격전 펼치길"
  10. 10통일부. 北 대남확성기 재개 위협에 “문제 해결 노력에 호응” 촉구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3. 3[뭐라노] 금양 부활할까
  4. 4부산 명물 삼진어묵, 상하이 입맛 잡는다
  5. 5내년 주목할 세계 여행지 톱10에 부산… 국내 유일
  6. 6부산 몸집 키우는 해양금융 생태계
  7. 7"원전 사업자 한수원, '안전 미준수' 과징금만 5년간 338억원"
  8. 8선원노련 김두영 위원장, ITF(국제운수노련) 집행위 선출
  9. 9이번엔 할리스…고객 개인정보 276만 건 유출(종합)
  10. 10기술유출 엄단…산업부 ‘특사경’ 도입 추진
  1. 1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2. 2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3. 3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4. 4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5. 5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6. 6“미래대응기금 조성, 교부세 축소 안 돼”
  7. 7이번에는 진짜 가야할 때…‘부캉이’ 다시 바다로 보낸다
  8. 8어린이집 앞 석면지붕 빼곡…소유주들 빈집 등 이유로 방치
  9. 9상습 음주운전 꼼짝마…후 불어야 시동 걸린다
  10. 10주 15시간 넘기면 인건비 30%↑…생존 위해 쪼개기 고용
  1. 1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2. 2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3. 3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4. 4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5. 5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6. 6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7. 7‘통산 최다안타 3위’ 손아섭, 두산에서 방출…선수 생명 이어갈까
  8. 8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 여자 단식 최다우승 기록세워
  9. 9부산시청 고은, 전국체전 金…女사격 비공인 세계신기록
  10. 10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원칙이 흔들린 대가
‘빵과 책’·양자경·강말금 그리고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발가벗겨진 사우디
“난 짜장”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LCC 통합 때 약속한 부산 허브 구축, 정부가 이행하라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무색, 제도적 미비점 보완 시급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