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미중 경제 갈등과 같은 국제 이슈는 정치적 긴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환경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배럴당 139달러까지 급등했다가 작년 말에는 70달러 선까지 하락하는 등 예측 불가의 변동성을 보인 브렌트유 가격이 가장 알기 쉬운 사례다. 석유나 천연가스를 수입해서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국가들은 이런 동향이 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초조하게 바라본다.
우리나라는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원의 비중이 전체의 63%에 이르고 있다. 국가 에너지원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데 그마저도 97%는 수입에 의존한다. 에너지 공급망이 불안하다는 의미다. OECD 평균 에너지 자립도가 0.85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고작 0.18에 불과한 것을 보면,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에너지 자립은 여전히 요원하게 보인다.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에 걸친 산업발전 과정을 우리는 초압축 성장을 통해 20여 년 만에 달성했다. 그러나 산업에 필요한 에너지는 자립이 아닌 수입 의존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립형 에너지 확보는 희망이자 꿈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도 산유국? 영일만 석유·가스 발표에 와글와글’. 지난달 초 국내외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화제의 기사 제목 중 하나다. 화석연료 사용이 피해갈 수 없는 작금의 글로벌 환경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는 점이 다소 의외이기는 하지만, 석유와 가스의 매장 가능성이 있는 영일만을 정부가 직접 채굴해 보겠다는 발표였다. 원유나 천연가스 유전개발은 크게 업스트림(Upstream), 미드스트림(Midstream), 다운스트림(Downstream) 의 세 단계로 나뉜다. 업스트림은 탐사 시추 채굴 등을 포함하는 원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단계다. 미드스트림은 원유나 천연가스의 이송을 주로 다루며, 다운스트림은 원유나 천연가스를 정제하는 화학산업과 일반 에너지 사용에 관한 분야를 말한다. 관련 산업이 도시가스나 정제유 등 구체적 형태를 가진 에너지의 최종 소비단계로부터 멀리 위치할수록 해당 분야는 업스트림으로 분류된다. 소비자가 직접 접하는 최종 소비단계에서 멀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이 업스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업스트림 영역은 지질 조사나 시추, 그리고 경제성 평가 등을 다루므로 제조업과 연관된 ‘전통 엔지니어링’과 차별화된다. 그래서 제조업 강국인 우리나라와 연관된 부분은 원유나 천연가스를 운송하는 선박을 건조하는 정도다. 물론 탐사나 시추용 첨단 선박의 건조 물량 대부분도 조선기술 최강국인 우리나라의 몫이기는 하지만, 핵심 기자재나 설비에 대한 공급망 확보가 쉽지 않은 현실을 참작하면 외국 기업들의 이익만 불려주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실익이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워낙 돈이 되는 사업이다 보니 초거대 에너지 기업들은 이들 세 가지 영역을 모두 포함하는 형태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최근 영일만 사업에 관심을 보였던 ‘엑슨모빌’과 수년간 동해를 훑다가 철수했다는 ‘우드사이드’라는 기업도 통합형 유전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초거대 기업이다. 유전개발 중에서도 심해 유전개발은 매우 폐쇄적 시장이라 거대 에너지기업끼리 철옹성을 구축하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각축하고 있다.
영일만의 경제성 여부에 대해 다양한 이견이 있다. 그런데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점이 유전 자체의 경제성은 사실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심해 유전개발은 채굴 가능성과 채굴 비용 회수만 전제된다면 해볼 만한 사업이다. 이익의 규모는 그 다음 고민이다. 먼저 생각해 볼 점은 누가 그 이익의 수혜집단이 되느냐다.
우리나라가 제조업 강국임은 분명하지만, 아직 심해 유전개발에서 메이저가 되어 본 적은 없다. 경험이 없다고 심해 유전개발 능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는 우리 해역이 아닌 깊은 수심의 먼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 관심 밖의 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의 제조역량이나 경제 규모를 고려한다면, 미드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은 충분히 운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량 밖에 있는 업스트림에 대한 수혜자는 누가 될지 궁금해진다.
업스트림을 생각하다 같은 제목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행동경제학자 댄 히스는 그의 저서 ‘업스트림(Upstream)’에서 같은 문제에 반복해서 부딪히는 이유로서 문제 불감증과 단기 해법에만 골몰하는 터널링 증후군을 들고 있다. 제목이 같은 것도 우연일까. 오프쇼어(Offshore) 사업에서 이미 쓴맛을 많이 보았던 우리 산업계가 또다시 같은 문제를 겪지 않을 방법을 댄 히스는 이미 알려주고 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실현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우리 바다에서 일어날 일이다. 영일만 바다가 대박을 터뜨릴 시장이라면 그 바다에서 수확해야 할 경제적 이익도 우리 기업 몫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철저히 ‘그들만의 리그’로 움직이는 심해 유전개발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 모두가 염원하는 산유국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