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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칼럼] 건강주치의 제도가 의료 개혁의 핵심인 이유

이상이 제주대 의과대학 교수

  • 이상이 제주대 의과대학 교수
  •  |   입력 : 2024-06-13 19:40:34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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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그리운 것이 있다면 주치의다. 그들은 아픈 이를 돌보는 아버지 같은 존재다. 주치의는 병원의 입구다. 어떤 전문의를 만나야 할지 모를 때 어디로 가라고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서 수년간 생활했던 네덜란드 사람 헨리 사브나이에 씨가 쓴 기고의 일부인데, 2006년 2월 5일 한국일보에 실린 것이다. 유럽 선진국에 존재하는 주치의 제도가 한국에는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그는 주치의가 ‘아버지 같은 존재’로 ‘병원의 입구’라고 표현했다. 주치의는 지역사회 주민이 질병 치료와 건강을 위해 가장 먼저 대하는(접근성) 보건의료기관이다. 그러니까 ‘병원의 입구’가 맞다. 또 주치의는 환자의 생활 습관과 건강 상태를 잘 알고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계속 유지(지속성)하면서 건강·질병에 관한 모든 분야를 담당하고(포괄성) 지역사회와 주민의 건강과 질병 문제를 해결(책임성)한다. 따라서 ‘아버지 같은 존재’라는 표현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OECD Health Statistics 2023’에 의하면, 2021년 우리나라의 임상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평균 3.7명) 중에서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적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 국민의 의료 이용은 압도적으로 많았다. 2021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이용 횟수는 연간 15.7회였는데, 이는 OECD 회원국 평균(5.9회)의 2.6배나 된다. 입원도 마찬가지인데, 입원환자 1인당 평균 재원일수는 18.5일로 OECD 국가(평균 8.1일) 중에서 일본 다음으로 길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가장 적은 의사 수에도 불구하고 의료 이용이 입원·외래를 불문하고 OECD에서 가장 많다.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부지런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근면·성실해서 의사 생산성이 높은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의사들이 질병의 예방과 건강증진·건강관리 등의 본질적인 지역사회 일차보건의료 업무는 하지 않는 채 아파서 의료기관을 찾아오는 환자의 치료에만 몰두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3분 진료’가 중심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의원급 의료기관(동네의원)이 엄청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질병의 예방과 건강증진·보건교육·건강관리·방문의료 등이 작동하는 지역사회 보건의료 체계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사회 건강주치의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치의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동네의원은 ‘아버지 같은 존재’가 아니며, 제대로 된 ‘병원의 입구’도 아니다. 그저 찾아오는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의료기관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의료전달체계의 미비로 인해 모든 의료기관이 모든 종류의 환자를 놓고 무차별적으로 경쟁하고, ‘자유로운 의료기관 선택권’을 가진 환자들은 지명도 높은 대형 의료기관을 선호한다. 이런 가운데 동네의원은 생존을 위해 경쟁적으로 무리한 투자와 진료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아까운 의료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이는 선진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퇴행적 모델로 보건의료 제도의 발전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의료전달체계 확립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것은 정부가 대형병원 이용에 규제만 가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 특히 결정적인 것은 동네의원의 매력과 신뢰 부족이다. 따라서 올바른 해법은 동네의원의 본질과 역할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전문 치료를 담당하는 대형병원과 구별되는 동네의원의 본질은 지역사회 주민의 건강이고, 동네의원의 역할은 흔한 질병의 포괄적 치료뿐만 아니라 질병예방·건강증진·질병관리·방문진료 등의 지역사회 일차보건의료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의사-환자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조치가 바로 지역사회 건강주치의 제도의 도입이다.

2012년 OECD는 “한국인들은 첨단장비를 갖춘 대형병원을 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방지할 수 있는 입원’이 매우 많을 뿐만 아니라 입원 기간도 긴데, 이는 지역사회에 기초한 강력한 일차보건의료(건강주치의 제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OECD는 “병원과 치료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은 장차 고령화로 국민 의료비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므로 일차보건의료 체계를 조속히 구축”하라고 권고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 체계의 확립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역사회 건강주치의 제도’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건강주치의 제도는 지역주민이 주치의를 선택해서 등록한 후 건강위험 평가, 만성질환 관리, 건강검진, 예방접종, 건강교육, 전화상담, 방문진료, 진료의뢰, 회송 후 관리 등의 포괄적 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이는 급속한 고령화와 복합 만성질환 시대를 능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 기존 ‘의료기관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그리고 ‘치료 중심에서 예방·건강증진 중심으로’ 보건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인데, 우리 사회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의료 개혁의 핵심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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