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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열반, 세상 모든 것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

세상 희로애락에서 열반 얻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처럼

주어진 삶 사랑하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 하나하나가 부처다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   입력 : 2024-05-15 19:50:57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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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동북쪽에 ‘가야’라는 지역이 있다. 그중에서도 남쪽에 있는 한 작은 마을은 따로 ‘보드 가야’(Bodh Gaya)라 불린다. ‘깨달음의 가야’라는 뜻이다. 약 2500년 전, 이곳의 한 나무 아래에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로서 인간의 숙명과 그 무력감에 대한 번뇌에 사로잡힌 채 삶과 죽음과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끝없는 질문에 해답을 얻기 위해 깊은 명상에 빠져있던 인물이 있었다. 고타마 싯다르타다.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은 그는 세상으로부터 ‘붓다’(Buddha), 즉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이름을 부여받았으며 그로부터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인 불교(Buddhism)가 탄생한다.

필자는 바로 보드 가야에 있는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mple, 큰 깨달음의 사원)의 그 보리수나무(Bodhi Tree) 아래에 앉아 있다. 언급한 지명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드’(bodh)는 산스크리트어로 ‘깨달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그 보리수는 수종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나무’라는 뜻의 고유명사다. ‘보디’가 ‘보리’로, ‘트리’가 한자 나무 ‘수’로 번역되면서 보리수가 된 것이다. 이 ‘깨달음의 나무’의 수종이 ‘반얀트리’다.

인도를 여행한 후 인도의 철학과 불교적 가르침에 큰 감명을 받아 불후의 명저들을 남긴 작가가 있다. 헤르만 헤세다. 그의 소설 ‘싯다르타’는 부처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싯다르타는 ‘고타마’라는 이름으로, 헤세가 만들어 낸 새로운 인물이자 주인공은 ‘싯다르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소설은 후자인 가공의 인물 싯다르타의 이야기다. 소설 속 싯다르타는 카스트 계급에서 최고층인 브라만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출중한 인물로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로 자란다. 그러나 그는 늘 내면의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느낀다. 진정한 업을 씻으면 ‘아트만’, 즉 진정한 불변의 자아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그는 출가를 결심하고 더 큰 가르침을 얻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는 사문들과의 생활과 고타마와의 만남에서 나름의 배움을 얻지만, 거기서도 완전함을 느끼지 못한 채 다시 속세의 삶으로 내려온다. 그리고는 고급 창부인 카말라에게서 육체적 사랑을 배우고 장사꾼 카마스와미를 통해 돈 버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어느 날 이 또한 자신이 원하던 삶이 아님을 깨닫고 모든 것을 버리고 홀연히 길을 떠난다. 결국, 그는 뱃사공 바주데바를 만나 그와 함께 사람들에게 강을 건네주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번뇌로부터 초연해진 줄로 알았던 그는 카말라가 죽으면서 남겨두고 간 자기 아들을 통해 다시 사랑과 고통을 함께 배우게 되고,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는 아들의 모습에서 오래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렇게 노년의 싯다르타는 어느새 승복을 입지 않은 부처가 되어 있었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깊은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고타마 싯다르타와 달리, 그는 세속의 삶 속에서 부딪히며 깨달음을 얻은 또 다른 싯다르타였다. 노년의 그는 삶 속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스승이었다고 말한다. 온갖 모순이 가득한 세상을 멀리한 채 홀로 평온해지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 세상을 이제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했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이 필요했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즉, 우리가 불필요하거나 악이라 여기는 것마저도 모두 깨달음을 얻는 데 필요한 것들이었다는 말이다. 나아가, 그는 우리가 열반이라 믿는 그것은 다른 데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에 있다고 말이다.

결국, 그가 말하는 열반은 곧 삶 속에서 나의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행위 그 자체이자 살아가는 것 자체다. 그러기에 세상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스승으로 여긴 채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또 한 명의 싯다르타이자 부처인 것이다. 그러니 거울 속 나도, 내가 바라보는 당신도, 모두가 부처가 되어가는 과정, 즉 깨달음의 과정에 있는 인간들이며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그 과정이 모두가 열반에 이르는 과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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