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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축제가 되고, 브랜드가 되는 걷기

갈맷길·장유누리길·올레, 사유·성찰의 장소로 각광

혼자 마음 여행도 좋지만 같은 공간 함께하면 최상

  • 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
  •  |   입력 : 2024-04-28 20:02:00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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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기만을 원한다면 달려가면 된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걸어서 가야 한다’. 1099일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만1000㎞가 넘는 거리를 옛날 마르코 폴로가 간 실크로드를 따라 걸었던 도보여행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그 긴 여정을 담은 책 ‘나는 걷는다’의 에필로그 첫머리를 장-자크 루소의 ‘에밀’에서 따온 구절로 시작한다. 그는 오로지 두 다리로 행한 이 여행에서 걸어서 여행하는 자만이 겪을 수 있는 경험과 감정을 독자에게 전해준다. 걷기는 그 속도에서 오는 여유로움과 시야의 확장을 통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한 ‘이동’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사람과, 자연과, 자신과의 만남의 기회를 제공한다. 예술·문화비평가인 레베카 솔닛도 ‘걷기의 역사’에서 “걷기는 세상을 여행하는 방법이자 마음을 여행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 걷기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가 고려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걷는다는 행위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걷기’는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러 가기 위해 걷는 일이나 집 앞 편의점에 간식을 사러 가는 일과도 다르다. 사유와 성찰의 시간으로서뿐만 아니라 걷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 또는 체력적인 한계에 다다르는 쾌감, 더 단순하게는 그저 가족, 친구와 함께한다는 느낌을 향유하기 위해 걷기에 나선다. 걷는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수단이면서 목적이 된 것이다.

걷기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이를 위한 다양한 길이 우리나라 전역에 조성된 지 오래다. 10여 년 전 초기 뜨거웠던 걷기 코스 개설 바람이 다소 약해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꾸준히 걷기 코스가 만들어진다. 오히려 그때보다는 더 차분하게 적합한 코스를 찾고 길을 이어서 한결 걸을 만한 코스가 선보인다. 이런 다양한 길에서는 개인적인 체험으로서의 걷기뿐만 아니라 생태학교와 같은 자연 보전을 위한 교육, 문화 체험, 음악회와 인문학 강좌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지역마다 열린다. 이 가운데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길의 지속성을 알리고 방문을 이끄는 두드러진 활동이 걷기 축제다. 걷기 축제는 ‘마음을 여행하는’ 혼자 걷기의 대척점으로 같은 공간을, 같은 마음으로 향유하는 함께 걷기의 정수와도 같다.

해마다 가을에 열리는 제주올레 걷기가 대표적인 걷기 축제다. 지난해 행사에는 약 1만 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이 사흘에 걸쳐 제주올레 3개 코스를 함께 걸었다. 교통·숙박의 어려움은 물론 궂은 날씨까지 감수하고 축제의 공간을 찾아 매일 짧지 않은 거리의 올레 코스 한 구간씩을 완주하려는 참가자들의 열의는 뜨겁다. 대부분 제주 밖 사람인 이들은 올레길을 마음에 품고 살면서 같은 마음을 지닌 이들과 함께 걸으려고 시간과 비용의 지출을 기꺼이 감내한다. 주변에도 가을 제주의 올레길을 걷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가 적지 않을 정도로 제주올레 걷기는 제주를 대표하는 축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제주올레만이 아니다. 지리산 둘레길에서도 해마다 봄, 가을로 코스를 달리해 걷기 축제가 열린다. 지리산 둘레길을 관리하는 사단법인 숲길이 주관하는 이 축제는 지역민과 외지 방문객이 어우러지는 지역 대표 축제로 자리 잡는다는 평가다. 국내 대표 걷기 코스 중 하나로 경기도 여주를 흐르는 남한강 구간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여강길에서도 2018년부터 여강길걷기축제가 열린다. 참가자들은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여강을 따라 걸으며 남한강의 역사와 생태, 문화를 배운다. 서산시 당진시 홍성군 예산군의 가야산 주변 충남 4개 시·군에 걸친 총 320㎞의 국가숲길인 내포문화숲길에서는 2015년부터 꾸준히 걷기축제가 열린다. 이들 걷기 축제에는 멀리서, 가까이서 해마다 ‘함께 걷기’의 매력을 느끼려는 이들이 꼬박꼬박 찾는다. 이처럼 ‘그때가 되면 그곳에서’ 열리는 각 지역의 걷기 축제는 그 자체로 지역을 알리고 방문객의 발길을 이끄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 있다.

이달 중순에는 경남 김해시에서 ‘2024 장유누리길 걷기 축제’가 열렸다. 김해와 창원에 걸친 불모산의 동쪽 자락으로 흘러내린 율하천과 대청천, 조만강을 잇는 13.5㎞의 코스를 걷는 이 축제는 올해 네 번째로 열리면서 지역 브랜드로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였다. 매번 1000명 정도의 참가자들이 찾아 장유의 봄을 만끽한다. 지역의 경관 자원을 활용한 걷기 코스 개설에 이어 걷기 축제가 지속해서 열리면서 경제적 낙수 효과로까지 이어진다. 앞으로 김해시는 장유누리길을 포함해 73㎞에 이르는 가야왕도 순례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장유누리길뿐만 아니라 갈맷길, 남해바래길, 지리산 둘레길같이 산과 강, 역사유산을 아우르는 지역의 다양한 둘레길에서 열릴 걷기 축제가 지역 브랜드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이진규 편집국 부국장 겸 (사)걷고싶은부산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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