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에서 국민의힘 참패나 조국혁신당 부상 못지 않게 원인 분석을 요하는 사안이 ‘정의당 0석’ 사태라고 본다. 정의당은 지역구에 17명을 내보냈으나 모두 낙선했고, 비례대표 지지율은 2.14%에 그쳐 의석을 단 1석도 배정받지 못했다. 17대 국회부터 꾸준히 6~13석 수준의 원내 3당 역할을 해왔던 정의당이 22대에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2012년 정의당 창당 이후로 치면 12년, 민주노동당 간판으로 첫 원내 진입에 성공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20년 만의 일이다. 유일한 지역구 의원이던 4선의 심상정 전 대표는 경기 고양갑에서 2등도 아닌 3등으로 밀려나 정계 은퇴를 선언해야 했다. 더 슬픈 건 이런 정의당의 퇴장에 주목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악플’ 보다 무섭다는 ‘무플’이다.
 |
|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지난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22대 총선 결과 관련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던 중 울먹이고 있다. 심 의원은 “진보정치 소임을 내려 놓는다”며 정계 은퇴 의사를 밝혔다. 연합뉴스 |
이번 총선에서 유행했던 ‘지민비조’의 원조는 정의당이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분리해서 투표하자는 구호는 정의당의 전신인 민노당이 제일 처음 외쳤다. 민노당은 소수정당의 의석 확보수가 정당 지지율에 한참 못 미치는 선거제 맹점을 개선하려고 헌법소원 끝에 1인 2표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관철시켰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분리 전략은 실제로 먹혀 들었다. 비례의석 하나쯤은 진보 계열 정당에 줘도 괜찮다는 유권자가 많았다. PK(부산 울산 경남)라고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PK는 지역구에서 민노당이나 정의당 국회의원을 꾸준히 배출해온 진보 정당의 산실이다. 하지만 권영길 노회찬 여영국의 지역구인 경남 창원에서도, 강기갑의 지역구인 사천에서도, 조승수의 지역구인 울산 북구에서도 대가 완전히 끊겼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좌파 이념을 내세운 정당의 퇴조는 뚜렷하다. 일본 사회당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를 만들 만큼 강력한 대안정치세력이었다.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기치를 앞세우고 30% 넘는 득표율을 과시하며 제1 야당으로 자민당을 위협했다. 하지만 내부 분열과 정책 타게팅 실패 등으로 핵심 지지층에서 멀어졌고 지금은 존재감이 아예 없다. 프랑수아 미테랑 정권의 주역인 프랑스 사회당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민영화 된 기업을 도로 국유화하자”며 시대착오적 공약을 들고 나오는가 하면, 이겨야 한다는 명분에 집착해 보수와 손 잡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결과다. 세상이 변하면 이념도 달라져야 하지만 정책 업그레이드와 세대 교체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대한민국 빈곤층은 민주노총이 아니라 대한노인회에 있다”는 진단은 민주노총이 주요 지지기반인 정의당에 던지는 일갈이기도 하다. 한때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한다고 자임하던 민주노총은 전교조가 합세하고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어느 순간 귀족노조의 대명사가 됐다. 민주노총의 입김이 세질수록 진보 정당은 중소기업 노동자, 하청 노동자, 소상공인과 거리가 더 벌어졌다.
모든 소수정당의 목표는 원내 진입일 것이다. 일단 정치 세력화가 이뤄져야 정당 이념을 실천하든지 말든지 하기 때문이다. 정당명부비례대표제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의석 확대를 위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밀어붙였고, 더 심각한 소수당 혹은 원외 정당으로 전락해 버렸다. 백번양보해 이는 원칙과 신의를 저버린 거대 양당 탓이라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십 억 주식을 보유한 이미선 헌법재판관이나 갖은 방법으로 자녀 입시 비리를 저지른 조국 법무장관 임명에 동의한 것은 어떤 설명으로도 합리화가 불가능하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정당이 상위 0.1%의 기득권과 편법을 감싸는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좌표를 못 찾고 정치공학에 휘둘린 결과, 정당 정체성은 사라지고 민주당 2중대라는 비아냥만 남았다.
지금 대한민국에 살아남은 정당의 면면을 보면 정의당의 빈 자리는 더 아쉽다. 한쪽에서는 상속세를 대폭 깎자며 재벌 옹호에 바쁘고, 다른 쪽에서는 전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씩 나눠주자고 한다. 자신을 짓밟은 검찰에 보복을 선언한 정당이나 노인 무임승차 폐지가 공약인 정당도 여러 석 확보했다. 세대별 계층별 극단적 갈라치기와 매표 경쟁만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정치의 저질화다.
20년 전 민노당의 국회 진출 의미는 “당사에서 국회까지 걸어오는데 5분 걸렸지만 노동자의 국회 입성에는 50년이 걸렸다”던 고 노회찬 전 의원 말에 담겨 있다. 50년 공든 탑이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다. 한때 국회 의석 13석, 비례대표 지지율 20%에 육박했던 기억이 불과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가물가물하다. 정의당이 내세웠던 일하는 사람, 약자 동행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놀라울 만큼 정의당 퇴장에 무덤덤한 시민사회 반응 앞에서 이런 정당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마저 희박해졌다는 사실이 새삼 아찔하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