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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조갑룡 교육인

  • 조갑룡 교육인
  •  |   입력 : 2024-04-16 19:49:46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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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에서 푸성귀 몇단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가 있었다. 어느 아주머니가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 생각에 “이거 다 사면 얼마예요?”라고 물었다. “한 번에 다 팔지 않습니다. 조금씩 팔면서 사람들 구경도 하고, 또 이거 사러 오는 친구들도 있어요.”

충북 제천에서 동물병원을 하는 친구의 병문안을 가면서 동승한 친구에게 던진 ‘너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야, 감동이다. 그런데.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쭈뼛쭈뼛,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단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친구 병원 입구 현판에는 ‘뭐 하고 살았나?’라는 촌철활인(寸鐵活人)의 이야기가 씌어 있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라는 것을 체득한 문구다. 평생 파고들어도 지치지 않을 사유(思惟)의 주제, 자기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친구. 몸은 일시적으로 힘들겠지만 그의 말간 눈동자는 차라리 아름다웠다.

나라는 존재의 본질은 나의 이야기로 확인된다. 나의 이야기는 본질로부터 나와야 생명력이 있다. 출신 대학이나 졸업 후 지위나 연봉은 존재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내 안의 나와 끊임없는 대화에서 ‘나다운’ 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15세기에 편찬된 불교경전 석보상절(釋譜詳節)에서는 ‘아름답다’를 ‘아(我)답다’라고 표현했다. 아름다운 것이 나다운 것이라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났을 때, 즉 내가 나다운 상황이 되었을 때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으로서 ‘보여주고’ 싶은 모습보다 타인이 나를 바라볼 때 ’보여지고‘ 싶어하는 이미지가 되고 만다. 나다움은, 아름다움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는 건 어렵다.

본래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존중에서 오는, 푸성귀 할머니처럼 내가 아니면 불가능한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자기다워지는 것이고 자신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길이다.

필자의 책상 앞에 붙어있는 글귀,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운을 뗀다. “이기대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50개 코스 770km의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작년 초가을, 20코스 출발지 강구항에서 영덕해맞이공원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졌다. 힘겹게 걷고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승용차가 곁에 선다. 하지만 타지 않았다. 걸으러 왔기 때문이다. 가슴이 뿌듯했다. ‘목적’이 중요하다. 이게 지금 나의 이야기다. 너희들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

강의는 ‘연애편지와 자기소개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에 와서 끝을 맺었다.

“연애편지는 나를 상대방의 인생 파트너로 삼아 달라는 제안서다. 자기의 능력을 자신만의 특별한 사례를 들어 설명해야 한다. 자기소개서 역시 나는 대단한 학생이니 당신 대학에서 나를 데려가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너는 고등학교 시절에 무엇을 했니?”라는 질문에 이어 “가고 싶어 하는 대학, 그 학과가 너를 선발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었는가?”고 다그쳤다.

이 칼럼 또한 연애편지나 자기소개서와 같이 필자 자신의 체험과 이야기가 중요하다. 하여, 칼럼을 어떻게 ‘쓸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더 많은 고민을 했다. 8주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를 했다. 해안길 산길 벚꽃길도 걸었고 미술관 영화관 책도 찾았다. 그 결과, 우리는 살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산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이야기는 삶 속에서 발생하는 아름다운 시행착오의 축적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푸짐한 요리를 시킨 고객에게 군만두를 덤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소주 두 병을 갖다 주는 것이 감동입니다’는 짜장면 배달부의 이야기는 필자가 훔치고 싶은 ‘한 줄’이다. 독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름만 전하고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 그 많은 넋들이 이제 편안하기를 바란다’는 김훈 소설 ‘칼의 노래’ 마지막 구절이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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