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대한민국 제2 도시’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주변에서 흔히 듣던 소리다.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1962년 서울이 특별시로 격상된 데 이어 1963년 곧바로 ‘정부 1호 직할시’가 된 부산의 도시 위상은 남달랐다. 그보다 한참 뒤인 1981년 대구와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됐다. 광주는 1986년, 대전은 1989년 각각 직할시(1995년 광역시로 개편) 지위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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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허브 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의 핵심지역 중 부산항 북항 재개발 1단계 구역 전경. 국제신문DB |
부산은 항만을 배경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범정부 차원의 수출입국 드라이브 정책을 주도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70, 80년대 산업화시대 전진기지로 인구와 교육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항상 서울 다음 위치에 올랐다.
19세기까지 동래부에 딸린 작은 포구였던 부산은 역사적·지정학적으로 국제 물류도시가 될 운명이었다. 1876년 개항 시기를 거쳐 1900년대 일제강점기 나라 밖에서 밀려온 근대 물결을 가장 먼저 만나는 한반도 관문이었다. 6·25 전쟁 당시 서울을 대신한 수도였으며, 직할시 체제에선 서울과 함께 국가를 지탱한 양대 버팀목이었다.
급성장한 부산은 ‘인구 400만 명 도시’로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1995년 부산 인구 389만9000명에서 정점을 찍은 이후 제2 도시는 추락했다. 공교롭게도 ‘지방자치 이념에 충실하고 세계화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관할 ‘직할시’가 민선 체제의 ‘광역시’로 바뀐 시점이었다.
21세기 들어선 부산의 도시 위상이 수도권 인천과 비교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기준 지역내총생산(GRDP)은 인천(104조5000억 원)이 부산(104조3000억 원)을 뛰어넘었다. 앞서 2017년 7대 특별·광역시 중 GRDP 2위를 처음으로 기록했던 인천이 2018년부터 부산에 밀렸다가 다시 추월한 것이다.
인천도 부산에 이어 ‘인구 300만 명 도시’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299만4500명이었던 주민등록인구가 올 1월에는 300만454명으로 집계됐다. 전국적인 인구 감소 추세에 변곡점이 생기지 않으면 앞으로 인구 300만 명이 넘는 도시는 나타나기 어렵다. 부산은 지난해 12월 329만3362명에서 올 1월 329만964명으로 줄었다.
인천시는 “대한민국 제2 도시로 도약하고 있는 인천을 300만 시민과 함께 더욱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그곳에선 ‘제2 도시 인천’ 구호가 자연스럽다. 어느덧 ‘제2 도시 부산’ 소리는 생기를 잃어가는 느낌이다.
각종 지표를 바탕으로 도시 위상을 따지는 것이 21세기 규범에는 어울리지 않는 잣대다. 세상 흐름에 따라 도시 구조와 경제 상황이 바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급변하는 첨단시대 도시의 질적 구조 변화와 시민 행복 추구 방안 실현이 더 중요하다.
미래를 내다보는 부산 새 비전은 이미 나왔다. 세계가 인정하는 글로벌 허브 도시(Global Hub City) 싱가포르 상하이 두바이 등을 능가하는 물류·금융·디지털 첨단산업 거점도시 도약이다. 부산시는 지난 1월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관련 정책 추진에 집중하고 있다. 26일에는 연령 성별 국적 장애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편리한 공간 및 환경 설계를 골자로 한 ‘글로벌 도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정부는 ‘글로벌 허브 도시 특별법’ 제정으로 뒷받침하기로 했다.
바다와 대륙을 이어주는 ‘아시아 게이트웨이(Asia Gateway)’ 부산의 국제 물류 환경은 돋보인다. 가덕신공항(2029년 개항)을 비롯해 세계 2위 환적항과 고속도로·철도망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경쟁력 있는 3대 교통망이 연계되는 트라이포트(Tri-port)는 다른 나라 허브 도시에는 드문 형태다. 바다를 땅으로 탈바꿈시키는 북항 재개발과 도심 철도 지하화 등으로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공간 확대도 계속돼 미래 성장 잠재력이 엄청나다.
전 세계를 누비는 컨테이너 화물을 처리하고 신발 목재 조선기자재 등 제조업도 활기가 넘쳤던 부산은 20세기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서울 경기 인천으로 쏠린다. 지방소멸이 심화하고 망국적인 수도권 쏠림 현상이 깊어지는 암울한 미래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지방이 살지 않으면 나라가 살 수 없다. 부산 서울이 다시 ‘대한민국 양대 축’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직할시 시절 제2 도시 개념과 차원이 다른 역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광역시 경계를 초월한 ‘세계 속 중추도시 부산’ 육성이 다급하다. 정치권 이해득실을 소모적으로 따지거나 지역 간 특혜 논란을 불필요하게 벌일 여유도 없다. 특별법 입법과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물론 교육발전특구 지정 등 만만찮은 당면 과제 해결을 ‘단디 하고’ 볼 일이다. 그리고 막중한 시대적 사명을 ‘똑띠 하자’.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