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식을 끝으로 지난 한 해의 학교 일을 마무리하면서 잡다한 서류들을 챙기다 수업시간 아이들이 제각기 쓴 글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지난 학기 2학년을 대상으로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이 두 과목을 맡아 지도했었는데, 선택과목이라 그런지 나름 관심 있는 학생들이 신청해 수업의 집중도가 꽤 높았다.

특히 ‘화법과 작문’ 수업은 교과서 위주의 이론보다 아이들이 직접 말하고 이를 글로 써 보는 모둠활동을 자주 가지려 했다. 논쟁이 될 만한 주제를 놓고 각 모둠에서 자유롭게 토론을 하고 그 입장을 정리해 모둠 대표 1명이 다시 토론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거를 마련하는 방법과 상대방의 주장과 근거에 대해 반박할 논리를 갖추는 훈련을 통해 자신의 논지와 주장을 객관화시키고 또한 상대방의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의 힘을 키우려 했다.

물론 의도와 다른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진지하게 임했고, 특히 3분간 자기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활동과 함께 설득하는 글쓰기가 무척 기억에 남았었다. 아이들 각자가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이슈가 될 만한 문제를 스스로 정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또 글로 써 보도록 했는데, 이를 통해 다음 세대들이 과연 세상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된 소중한 기회가 돼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사회에 대한 관심과 이를 바라보는 아이들 스스로의 눈을 갖추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선택한 주제 중 가장 많이 나온 것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였다. 일본의 행위가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해 국제관계 속에서 정치적 혹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접근하고 우리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선행돼야 한다는 요지의 글이 많았다. 그리고 이제 지구온난화의 차원을 넘어 기후재난에 대한 인류의 생존문제를 이야기하는 글이 그 뒤를 이었다. 결국 인간의 욕망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환경과 함께 이제는 임계점에 도달한 현 상황을 아이들은 매우 염려하고 있었다. 또 이를 막을 수 있는 전 지구적 대안과 그 행동양식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다음으로 우리사회의 저출산 초고령화 문제를 언급한 부분이 많았다. 왜 출산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사회적 원인을 오늘날 청년문제와 연결해 그 해법을 찾으려 했다.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생계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 그리고 엄청나게 가중되는 사교육비 부담으로 인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오히려 사치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었다. 어쩌면 학생들 입장에선 곧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이기에 더욱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노인인구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노인의 경제적 빈곤과 고독, 이로 인해 생겨나는 여타의 문제를 제시하며 국가 차원의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다수 나왔다. 한편으로는 이를 뒷받침할 세수(稅收)로 부유세와 로봇세 등을 도입해 충당시키자는 의견이 나왔고, 탈세(脫稅)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국가가 세금을 제대로 운용하고 있는지 그 견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았다.

이런 거대담론과 달리 직접 아이들 피부에 와 닿는 사안도 여럿 있었다.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 이후로 촉발된 교권 붕괴문제를 언급하며 교육 주체로서 학생 학부모 교사들 간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정부의 의대 증원에 대해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면서도 지역의 열악한 의료현실에 대해선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수능시험과 고교학점제 간의 관계가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대책이 추진돼야 한다고도 했다. 아울러 현재 만 14세인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화하고 선거 연령도 만18세에서 더 아래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화하는 시대 환경에 따라 청소년들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상으로 지난해 우리시대의 문제를 비록 수업을 맡은 몇 개 반 학생들의 얘기로 나열했지만, 아이들 눈으로 바라본 세상 속엔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궤적 그 이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에 대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유 없이 세상에 반항해보던 우리의 사춘기 시절, 그러나 정작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에 대해선 알 권리마저 박탈된 채 공부만을 강요당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이제는 세상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품고 이를 고민하는 장(場)을 아이들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더욱 마련해줘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은 단순히 가르쳐야 할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마땅히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바로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