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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아시아의 고아’와 동아시아 평화

나는 중국인 아닌 ‘대만인’…청년층 내셔널리즘 공고화

양안 갈등파고 더 높아져…평화 위한 대안 모색해야

이홍규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중국연구센터 소장

  • 이홍규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중국연구센터 소장
  •  |   입력 : 2024-01-31 19:35:48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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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3일에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 결과는 동아시아 정세의 위기감을 더욱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대만 독립을 당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는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대만의 차기 총통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선거 결과에서 대만에서 민주화가 진행된 이래 국민당 8년, 민진당 8년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져 온 ‘정권교체 8년 주기설’이 깨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동안 집권을 해온 민진당 차이잉원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그리 높지 않았음에도 다시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총통에 당선된 것은 대만인들의 여론 지형이 확연히 변한 데서 기인한 듯하다.

실제 대만 총통 선거 직후 실시된 대만민의기금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0%가 자신을 ‘대만인’으로 여긴다고 답했으며 11.6%는 ‘대만인이자 중국인’으로 답했다. 단지 7.2%만이 ‘중국인’으로 여긴다고 대답했다. 이는 70~80% 대만인들이 자신을 ‘대만인’이라고 여기는 것이고 대만인-중국인 이중정체성의 답변자들까지 포함해서도 ‘중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이는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이는 10년 전 절반가량의 인구가 자신을 ‘중국인’으로 여겼던 것에 비하면 크게 축소된 결과이다. 대만 청년 세대의 정체성은 더욱 ‘대만인’에 가까웠다. 20∼24세 중 90.8%, 25∼34세 중 86.1%가 자신을 대만인으로 규정했다. 더욱이 대만 청년 중 20∼24세는 54%가, 25∼34세는 57%가 대만 독립을 지지했는데 이는 ‘하나의 중국’을 주창해 온 중국으로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대만은 19세기 중반 이래 제국주의 열강에게 당한 굴욕의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다. 천하의 중심이라 자부해온 중국은 제1차 아편전쟁(1839~1842)에서 영국에 패하여 홍콩을 넘겨줬고 제2차 아편전쟁(1856~1860)에서 패한 뒤 열강들에게 강제적으로 조차지, 조계지를 내주는 등 반(半)식민지로 전락했다. 중국은 양무운동(1860~1894)에 힘썼지만, 결국 청일전쟁(1894~1895)에서 신흥 열강이 된 일본에도 패했다. 이때 일본에 빼앗긴 영토가 대만이었다. 그러니까 대만은 중화 질서의 변방에 위치하던 일본에마저 영토를 빼앗겼다는 치욕을 중국에게 상기시켜 주는 곳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중국이 제시해 온 ‘대만 통일’의 논리는 바로 이러한 굴욕의 역사적 상흔을 지우고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구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것이다.

하지만 대만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본래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원주민들이 살았던 대만은 방치된 섬이었다. 17세기 중반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비로소 많은 한족들의 이주가 이뤄졌고 명·청 교체기의 혼란 속에 청나라에 저항하던 명나라의 장수 정청궁이 나라를 세우기도 했지만 1683년 청나라로 복속된 뒤에는 다시 방치되었다. 그러던 중 청일전쟁 패배로 대만은 1895년부터 50년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1945년 해방 이후에는 대륙에서 건너온 중국 국민당의 강권 통치를 받는다. 한마디로 대만은 여러 외부 세력에 의해 지속적으로 시달림을 받았을 뿐 그 자체로 내버려졌던 것이다.

대만 소설가 우줘류가 쓴 소설 ‘아시아의 고아’에선 일제 강점기 대만에서 태어난 주인공 후타이밍의 일생을 통해 식민지 대만 사람들의 피폐한 정서를 잘 묘사하고 있다. 어린 시절 한학을 배웠지만 근대 신학문까지 배워 교사가 된 지식인 후타이밍. 그는 신분 상승을 위해 일본 유학까지 감행하지만 제국의 본토 일본에서는 오히려 전쟁포로 취급을 받는다. 청운의 꿈을 다시 품고 이번엔 모국인 중국으로 떠났지만 후타이밍은 일본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탈옥을 통해 겨우 대만으로 돌아오지만 중일전쟁에 징병 된 후타이밍이 참혹한 전쟁 속에서 정신이상자가 되는 것으로 종료되는 내용은 ‘아시아의 고아’ 신세가 되었다고 느낀 대만인들의 정서를 잘 대변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 역사의 희생물이었던 대만 사회가 달성한 고속의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성과는 대만의 독자적인 내셔널리즘 형성에 좋은 토양이 되었다. 특히 민주화 이후 태어난 대만 청년 세대가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더욱이 2019년 홍콩 사태 때 형성된 반중 정서는 이러한 대만의 내셔널리즘을 더욱 공고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세계의 화약고들이 계속 터지는 상황에서, 대만 정세의 변화는 동아시아 지역 역시 전쟁의 격랑 앞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정세 변화의 기저에 존재하는 ‘아시아의 고아’라는 비감에서 비롯된 대만의 독자적인 내셔널리즘 형성의 역사다. 관련국들은 세심한 마음으로 대만 사회의 정서를 살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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