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이불을 깁다

정재운 소설가

  • 정재운 소설가
  •  |   입력 : 2023-12-31 18:54:18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꽝꽝 언 겨울뿐인 세상에 대해 상상해본다. 밖은 눈으로 덮여 있고, 호빵과 붕어빵은 철을 가리지 않는다. 가습기 마를 날 없는 실내를 나서자마자 사람들은 잰걸음을 놓겠지. 변하는 것이 어디 걸음뿐이랴.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세상의 온도에 맞춰 변할 것이다. 반대로 열대우림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겐 열대가 일러주는 방식이 있을 테다.

우리집 아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빠져있던 때가 있었다. 엘사, 안나 자매의 성장담은 다시보기 서비스를 통해 영원처럼 되풀이됐다. 그들의 노랫소리는 이명이 되어 귓가를 떠나지 않았고, 길 가던 낯 모르는 사람들이 언제라도 노래를 부를 것만 같았다. 그러던 아이는 어느 날, 왕국으로의 발길을 뚝 끊었다. 꽝꽝 언 겨울뿐인 세상에 대해 떠올리게 된 것이 그쯤이었다. 설거지를 하며 혼자 ‘렛잇고’를 흥얼거리던 그쯤.

계절 구분이 선명한 이 나라에서 나는 과연 사계절을 충실히 살아내고 있을까? 시간강사로서의 난 학기와 방학을, 소설 쓰는 사람으로선 이야기가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라는 양단 간의 세계에 속했으면 속했지, 여름과 겨울 사이의 봄가을을 제대로 감각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초가을까지 입었던 옷을 박스에 넣고, 겨울 내 입을 옷을 옷장에 걸고, 홑이불 대신 두꺼운 솜이불을 꺼내는 일도 일 년에 두 번이었다. 바지런히 사계절을 살아내는 사람이라면 진작 알아챘을까. 이불이 많이 낡아있었다. 세상 어떤 마모도 과정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갑자기 이렇게 낡아질 수도 있나? 설마, 이불은 자신의 낡음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다.

이불깁기가 이뤄진 것은 족히 한 달은 더 흘려보낸 뒤였다. 티브이에서 우연히 누비이불 달인을 보았던 것이다. 애청까진 아니지만, 즐겨보는 해당 프로그램은 각 분야의 오랜 직업인을 찾아가 그만의 놀라운 기술을 소개하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그러곤 생활인으로서의 생에 성실한 결과라는 숭고함을 시청자들에게 일깨워주었는데, 경력 43년 달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누비무늬들은 나를 잡화점으로 내몰았다.

덧댈 천을 저렴하게 구한 것까진 좋았으나, 한 달 사이 천이 더 삭았는지 목 아래서 자주 접히는 부분이 찢어지고 말았다. 한 번 찢어진 이불 홑청은 절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심지어 바늘을 밀어 넣은 자리도 지지하지 못하고 찢어졌다. 그때 내 머릿속에선 수많은 달인들이 스쳐지나갔다. 그처럼 일반인이 주인공인 프로그램이 또 있다. 세상에 이리 신기한 일이 있다며 각종 재주와 사연을 풀어내는 그 프로그램이야말로 나의 애청 프로다. 범상치 않은 인생들이 펼쳐놓는 이야기는 케이블 채널의 재방송으로 볼 때 농도가 더 짙게 느껴진다. 수십 년 이어온 프로답게 본방송은 몇 해 전에 송출됐던 것인지 얼른 가늠하기도 어렵다. 제보자나 주인공의 화장법, 자막의 촌스러움 정도로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이격된 것인지 추정할 뿐. 마라톤에 대한 열정이 유난한 팔순 넘은 중노인의 사연을 보면서 여전하실까 생각해본다. 두꺼운 책 한 권을 오 분만에 읽어내는 속독 신동은 지금쯤 문학청년이 되었을까….

왜 시간은 그때 그 자리에 머무르는 법 없이 흘러가 모든 것을 낡거나 평평하게 만들까. 깜짝 놀랄만한 사연의 주인공이 돌아가시면 세상은 어제보다 좀 더 차분해지는 걸까? 아닐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마모시키고 닳아지게 만들지만, 능력을 잃어버린 신동에게 신동이었던 기억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노인의 마라톤 사랑은 시청자인 내 앙상한 다리를 부끄럽게 만들었으니. 다시 이불 이야기로 돌아가 저이의 마모를 조금이라도 일찍 알아차렸다면, 아니 알아차린 그때라도 깁기를 실행에 옮겼다면 덧댈 천은 그만큼 덜 들었을 테다. 수없이 되풀이해 보아도 늘 처음인 것처럼 엘사의 노랠 듣는 아이는 현재에 충실하기 때문 아닐까. 아이는 시간 속에서 마모되지 않는다. 저항하지도 않으며, 다만 성장할 뿐.

지나간 계절에 애끓거나 오지 않은 시간이 두려워 지금을 살아내지 못하는 이여, 자기 안의 방치된 이불 끄집어내어 깁기를 시작하자. 이 누비질은 사랑한다는 말의 바늘과 미안했다는 말의 실만 있으면 누구든 가능하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속보]미 애리조나서 60년 만의 민주당 주지사 당선, 상하원까지 다 장악
  2. 2겨울시작 '입동'인 7일, 부울경 맑고 쌀쌀… 외출땐 따뜻한 옷 필수
  3. 3[속보]대구서 자신 도우려던 구급대원 얼굴 때린 60대 벌금 700만 원 선고
  4. 4[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5. 5올가을 첫 얼음 관측… 오전 7시 설악산 영하 9도, 횡성 영하 6.8도
  6. 6미래에셋증권도 해킹 사고… 고객 3800여명 임직원 3만5255명 개인정보 흘러나가
  7. 7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1원… 전주보다 0.2원 ↓
  8. 8반여1·4동 어르신과 함께한‘사랑의 자장면 나눔’
  9. 9해운대구 재송2동 릴레이안부봉사단, 2026년 릴레이 다함께 가을소풍’ 추진
  10. 10해운대구 중1동, '술은 잠시 오프(OFF), 건강은 온(ON)’ 절주 캠페인
  1. 1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2. 2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인호 HUG 사장 지명
  3. 3홍익표 정무수석 사의 표명…후임에 최인호 HUG 사장 거론
  4. 4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5. 5김민석, 신천지 논란에 “죄송…조사결과 공개해도 문제”
  6. 6회생인가 촉구 시민 목소리 1차분 6일 법원 제출
  7. 7이 대통령, 법무장관 후보자에 이용철 지명…국세청장엔 안덕수
  8. 8[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소폭 반등한 41%…민주36%·국힘 28%
  9. 9김민석, 신천지 논란 재차 사과…“상처 입은 모든 분께 죄송”
  10. 10'조작기소 특검법' 오늘 與 주도 국회 본회의 처리 전망
  1. 1[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2. 2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1원… 전주보다 0.2원 ↓
  3. 3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4. 4‘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5. 5비에 화약 젖을라 손길 분주…400m 대형 불꽃 ‘카운트다운’
  6. 6부산 외국인 관광객 400만시대 성큼... 카드소비 1조 돌파
  7. 7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8. 8팔란티어 AI와 함께 만든다…부산 신발업체 창신 ‘혁신 점프’
  9. 9비수도권 미분양 적체…LH 매입 신청 86% 탈락
  10. 102005 APEC 이벤트서 대표축제로…100만 인파관리 ‘근육’ 키웠다
  1. 1겨울시작 '입동'인 7일, 부울경 맑고 쌀쌀… 외출땐 따뜻한 옷 필수
  2. 2[속보]대구서 자신 도우려던 구급대원 얼굴 때린 60대 벌금 700만 원 선고
  3. 3올가을 첫 얼음 관측… 오전 7시 설악산 영하 9도, 횡성 영하 6.8도
  4. 4미래에셋증권도 해킹 사고… 고객 3800여명 임직원 3만5255명 개인정보 흘러나가
  5. 5반여1·4동 어르신과 함께한‘사랑의 자장면 나눔’
  6. 6해운대구 재송2동 릴레이안부봉사단, 2026년 릴레이 다함께 가을소풍’ 추진
  7. 7해운대구 중1동, '술은 잠시 오프(OFF), 건강은 온(ON)’ 절주 캠페인
  8. 8'세브란스병원 흉기난동' 50대 여성 구속심사
  9. 9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10. 10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1. 1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2. 2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3. 3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4. 4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5. 5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6. 6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7. 7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8. 8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9. 9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10. 10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기고 [전체보기]
부산 관광 다음 키워드는 ‘건축관광’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공공재
선출 권력 통제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능인선원, 체불임금마저 대여금으로 처리하려 하다니
미 민주당 상·하원 장악…통상·안보 전략 재점검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낯설고도 궁금했던 부산과의 첫 만남
일상으로의 초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오래된 건축이 만드는 새로운 연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