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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소리] 일인칭의 이야기를 타전하다

김미양 작가·‘입가에 어둠이 새겨질 때’ 저자

  • 김미양 작가·‘입가에 어둠이 새겨질 때’ 저자
  •  |   입력 : 2023-12-17 19:34:3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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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또 연말이다. ‘청년의 소리’ 코너에 얼굴을 들이민 지도 이제 꼬박 2년이 다 되어간다. 부끄럽게도, 그동안 단 한 번도 ‘이거다’ 싶은 글을 써내지 못했다. 왜, 하필, ‘청년’의 ‘소리’인가. 나는 늘 두려웠다. 청년들의 삶을 대변할 만한 대표성이 나에게 없었고, 모두가 주목하는 논쟁거리에 나만의 의견을 덧붙여나갈 논리나 성찰도, 대중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비출만한 사려 깊음도 부족했다. 나는 그냥 나였다. 내가 살아온 만큼만 생각할 수 있었고, 딱 내가 생각하는 그만큼만 쓸 수 있었다.

그러다 지난 11월에 출간된 책 ‘일인칭 가난’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을 쓴 안온 작가는 1997년에 태어나 20여 년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인물이다. 자신이 겪은 가난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내면서 그것이 지방 청년 젠더 복지 문제와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밝힌다. 혹자는 반문할지도 모른다. 요즘같이 살기 좋은 시대에 무슨 가난이 있느냐고. 너희들이 힘들어 봐야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안온 작가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라며 일반화하려는 시도나 자신이 이 시대 가난의 표준이라며 대표성을 띠려는 욕심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다만 숨김없이, 일인칭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뿐이다. 세상에는 “일인칭의 쟁쟁한 목소리들이 필요”하므로. “다른 누군가가 이어서 일인칭의 가난을 쓸”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갖고.

아마 이 책을 읽은 이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지 않을까 싶다. ‘요즘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몰랐던 사실을 처음 알게 되어 놀라는 쪽과, ‘사실은 나도 이렇게 살았었는데’하고 감춰두었던 진실을 다시 마주하게 되어 놀라는 쪽. 고백건대, 나는 후자에 속한다.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랐고, 그 상처를 곱씹는 게 쓰라렸고, 이후에는 미안함을 느꼈다. 내가 안온 작가보다 꼬박 열 살이 더 많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보다 더 힘들었거나 덜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먼저’ 쓰지 않아서. 그래서 죄책감이 밀려왔다.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십 년 전, 내가 안온 작가의 나이일 때 나는 안현미 시인의 ‘거짓말을 타전하다’를 읽고 울었다. 70년대생이 쓴 청춘의 고백을 떠듬떠듬 따라 읽으며, 슬프지만 슬프지만은 않고 외롭지만 외롭지만은 않은 기분으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었다. 그런데 내가 타인의 가난에 위로받고 내 가난을 감추는 사이, 내 뒤에 태어난 누군가는 투쟁 같은 삶을 살아내며 자신의 가난을 세상에 발표했다.

70년대생 안현미와 90년대생 안온, 그 사이에 낀 나에게도 나만의 ‘일인칭 가난’이 존재한다. 진작 그걸 썼더라면, 고만고만 비슷한 형태지만 서로 조금씩 다른 향과 맛을 내는, 그런 알사탕 같은 이야기가 한 알 한 알 늘어갈수록 우리들의 이야기는 더 풍성해졌을 텐데. 나의 소극적인 태도가 어쩌면 이 시대의 가난이 사라진 것마냥 포장하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닐까. ‘청년의 소리’에서 내가 낼 수 있는 소리, 내야 하는 소리는 그저 일인칭의 소리. 누구를 따라 우는 것도, 외치는 것도 아닌 나만의 소리였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거짓말을 타전하다’에는 ‘벌레가 된 사내를 만난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카프카의 ‘변신’ 이야기다. ‘일인칭 가난’에는 작가가 열아홉 살 되던 해 백석의 시를 만나게 된 일화가 등장한다. ‘흰 바람벽이 있어’는 그녀 삶의 기도문이었다.

나로서는 이렇게 말해야겠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녀들을 만난 게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고. 그러니 앞으로는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라도, 키보드 위로 더듬이 같은 손가락을 갖다 대보자고 다짐한다. ‘거짓말 같은 시’든 ‘넋두리 같은 칼럼’이든,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살아온 일인칭의 이야기를 더듬더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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