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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수의 그림산책] 도상봉의 격조 있는 ‘달 항아리’

  • 황정수 미술평론가
  •  |   입력 : 2023-12-10 19:13:20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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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에 ‘달 항아리’ 열풍이 끊일 줄 모른다. 한때 차를 마시는 그릇, 다완(茶碗) 만들기에 열중했던 전국의 도예가들은 요즘은 커다란 ‘백자호(달 항아리)’를 빚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만큼 찾는 이가 많다는 이야기다. 다른 분야의 공예가들도 달 항아리를 소재로 한 작품을 개발하느라 머리가 희어지는 줄 모른다.

도상봉의 ‘달 항아리’.
이뿐만 아니라 풍경이나 인물을 주로 찍던 사진가들조차도 이제 달 항아리를 포함한 백자 찍기에 바쁘다. 이런 백자 사진을 보고 백자 전시도록에 실린 질 좋은 사진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진가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근대 미술품에 달 항아리를 포함한 백자가 등장한 것은 회화 분야가 먼저다.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1904~1967)의 영향을 받아 백자 수집에 열을 올렸던 서양화가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는 자신의 그림 속에 백자를 넣은 선구자라 할 수 있다. 1944년 김환기는 김용준이 살던 성북동 집 ‘노시산방’을 인수하여 ‘수향산방’이라 이름을 바꾸고 1948년까지 살며 소공동이나 인사동 골동가게에서 많은 백자를 구해 친구들과 함께 즐겼다. 이때 백자를 애호했던 마음이 1950년대에 그린 유화 작품 속에 스며들어 많이 등장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여러 종류의 백자가 등장하지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역시 둥그런 백자호, 곧 ‘달 항아리’이다.

김환기의 집에는 많은 친구가 모여들어 음주를 곁들이며 서화골동을 즐겼다. 손재형 이태준 윤희순 윤효중 등 많은 친구가 모였다. 서양화가 도상봉(都相鳳, 1902~1977) 또한 인근에 살아 자주 김환기의 집에 드나들었다. 도상봉은 김환기가 가지고 있는 백자에 감명을 받아 그의 작품 속에 그려 넣기 시작했다. 주로 백자에 꽃을 꽂은 것이 많고, 백자와 과일을 나란히 두고 그린 정물화도 많았다. 그는 특히 도자기 하나 만을 따로 떼어 화면 가득 채운 작품을 여러 점 그렸다. 그래서 호를 ‘도천(陶泉)’이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도자기 소재 그림 중에서 단연 압권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화면 전체에 달 항아리 하나를 가득 채운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도상봉의 달 항아리 그림은 여느 달 항아리를 소재로 한 작품에 비해 빼어난 격조를 보인다. 부드러운 붓으로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옅게 거듭 반복해서 칠해 깊은 맛을 내는 그의 그림은 다른 이의 것과 달리 높은 격조가 담겨 있다. 전통적인 소재에 대한 애착, 차분히 가라앉은 은은한 색조, 부드러운 필치 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얼핏 보면 장식적이고 쉬워 보이는 그림 같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비범한 품격이 있다. 마치 모딜리아니(Modigliani, 1884~1920)가 여인을 소재로 비슷한 그림을 자주 그려 단순한 듯 보여도 색감이나 구성에서 높은 격조를 보이는 것과 유사하다.

화면에 가득 찬 달 항아리는 하늘을 가득 채운 보름달 같으면서 달이 상징하는 풍요로움이 깃들어있다. 도상봉은 이러한 달의 풍요로움과 생명력을 달 항아리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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