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따라 늘어가는 눈물을 호르몬의 변화 탓으로만 떠넘겼다. 한국 사회가 용인하는 단 세 번의 경우가 아니었기에 사내의 눈물을 애써 억누르기 바빴고, 어쩌다 들켜버리면 눈물과 함께 감정도 서둘러 닦아 버려야 했다. 부친의 주검 위로 흙을 얹으며 터진 눈물샘, 20대 중반이 된 그제야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을 향해 눈물을 쏟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다른 이의 슬픔과 기쁨에 쉽게 전염되어 감정이 솟구치곤 한다. 늘어난 눈물은 생리학적으로도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자연과 사람 그 삶 속에서 점점 불어난 공감 능력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크다. 덕분에 내가 아닌 다른 삶이 겪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함께 느낄 수 있고 그 감정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공감 능력은 인간의 지능 중 하나로 다양한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교육과 사회 경험 그리고 노력으로 계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한다. 1980년대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교에서 IQ(지능 지수) 검사를 통해 언어 논리 기억 처리 속도 등의 능력을 수치화하여 학업의 성취도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 등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특정 작업에 대한 능력 지수 즉, IQ가 높다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데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지도 비례하지도 않았나 보다. 이후 대니얼 골먼이 개발한 EQ(감성 지수)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여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인 EQ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성찰과 학습을 통해 계발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인간의 총명함을 결정하는 것은 IQ가 아닌 EQ이며, IQ가 높은 것이 그 사람의 성공과 행복한 삶에 기여하는 정도는 불과 20% 정도이고 나머지 80%는 EQ가 결정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하워드 가드너는 앞선 지능 외에도 신체 운동, 음악, 자연 관찰 등과 관련한 다양한 지능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을 한다는 다중 지능을 주장했다.

생활 양식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요구되는 지능에 대해 관심이 더해지겠지만 자연 속에서 무리를 이루고 사는 인간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자아 성찰과 다른 대상과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의 소통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이유로 지금도 많은 직장에서 ‘마음의 지능 지수’라 불리는 EQ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경영 철학으로 삼고 있다. EQ는 결국 ‘공감 능력’이다. 공감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더불어 사는 능력이며, 진정성을 통해 완벽한 소통을 이루고 성공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만든다.

언어 소통이 불가능한 낯선 국가의 이방인에게 눈빛과 표정, 몸짓으로 의사를 전달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성과 감성을 총동원하여 소통하는 까닭에 공감을 쉽게 이룰 수 있고 상대방에 대한 친밀감과 신뢰도가 더 강하게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공감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감정과 생각의 공명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본능에 가까운 욕구로 우리는 이러한 공명을 즐기고자 예술가의 감정과 생각에 귀를, 아니 마음을 기울인다. 외로움과 배고픔에 맞서가며 처절하게 응집시킨 예술 작품을 통해 그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공감하기 위해 작품 속에 담긴 그의 눈빛과 표정, 몸짓을 헤아려 보곤 한다. 근래에 조금씩 공감 능력이 불어나 공명의 희열을 느끼는 예술 분야가 있다. 서정성을 서사 구조로 해석하려는 정도의 어설픈 이해력으로 바라봤던 춤사위에서 어느 순간 시를 음미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함축성을 읽어내기 위해 춤사위의 내포적 의미를 내 머릿속에서 들추며 그와 공감하고자 노력하던 중, 춤이 시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 지능 기술이 발전하여 인간의 감성을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공감 능력마저 생긴다면 예술 분야 또한 어느 순간 인간을 대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되었을 예술만큼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공명의 영역으로 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