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약전을 집필하며 배운 것

정재운 소설가

  • 정재운 소설가
  •  |   입력 : 2023-10-22 19:21:11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 14일 부산 남포문고 문화홀에서 부산문화재단이 공모한 ‘2023년도 부산문화예술 아카이빙 사업’의 일환으로 학술세미나 ‘흰샘 이규정의 문학세계’가 열렸다. 고(故) 이규정 소설가는 1997년 월간 ‘시문학’에 ‘부처님의 멀미’로 등단한 이래 2018년 타계할 때까지 장단 이십여 권에 달하는 소설을 집필했으며, 각종 산문집과 문학연구서 등을 펴냈다. 선생이 이룩한 성취에 비해 작가의 삶과 미학에 관한 연구는 일천하다시피 한 시점에서 이날의 세미나는 후속 연구와 비평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할 만했다. 필자는 ‘이규정 단편소설의 현실인식과 작가의식’에 관한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문의 말미에 필자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W. B. 예이츠의 시구를 빌려와 ‘말년의 양식’이라는 특질로 선생의 작품을 톺아 읽어나가는 연구에 대하여 질의했다. 현로한 노인의 자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에 대한 대시인의 탄식을 떠올렸던 것은 왜일까. 세대 간 고립과 단절 속에서 왜곡된 사고와 판단을 하는 자들이 바로 현실의 뭇 노인들이 아닌가. 가짜뉴스에 쉽게 현혹되고, 나아가 비식별적으로 이를 생산하는 일에 참여하는 그들을 존경하기란 얼마나 어려우냐 말이다. 가만, 이리 급발진하는 필자의 일반화는 대체 어디서부터 비롯한 것일까. 혹 저들이 일군 역사와 현실에 기거하면서도 당면한 생활을 꾸려가는 데에만 골몰했던 스스로의 부채감이 아닐까.

지난봄부터 이어진 아카이빙 연구는 한 작가의 전 생에 걸친 방대한 활동을 추적하는 일이었다. 성취와 업적을 훑고 정리하는 데에 필자를 포함한 네 사람의 소설가와 평론가 세 사람이 힘을 모았다. 앞서 밝힌 네 편의 연구논문과 인터뷰 회고 글 연보 저작물 목록 등에 미완결 연재소설의 소개까지 덧붙이는 작업이었다. 그 가운데 필자는 선생의 생애사를 A4 스무 장 분량의 약전으로 써내는 일을 맡았다.

어느 하루의 일기를 쓴대도 범상한 일상으로부터 불쑥 밀려 나오는 순간이 있는데, 팔순 넘은 인생은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수놓고 있으랴. 더욱이 필자는 이번 연구에 참여하기 전까지 선생을 알지도 못했다.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움으로 전환되기까지는 몇 계절을 건너야 했다. 부단히 창작에 매진해 온 소설가이자, 뭉근한 열도로 사회개조에 힘써온 시민사회의 스승이었으며, 교리에 순명하는 신앙인이었던 선생에 대한 존경심을 갖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했다.

다양한 시간과 자리를 지나온 삶에 대한 경외심은 곧 필자 자신을 작게 만들었다. 적어도 소설을 쓰겠다는 자가 자기성찰은 고사하고, 가뜩이나 혐오가 쉬운 세계에서 나태한 판단에 젖어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된 것이다. 노인을 위하지 않는 나라에서 과연 나는 노인이 되도록 살더라도 어떤 지혜를 가질 수 있을까. 무엇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똬리를 트는 의심이 나를 골탕 먹이기 시작했다. 연구팀에는 선생과 부산문단의 선후배로 연이 있는 소설가도 있었고 심지어 선생의 문학수업을 수강했던 제자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50년 가까이 연상인 당신을 모른다 주저하고만 있던 필자는 얼마나 자격이 없는가! 그 같은 볼품 없는 마음의 형(形)이 더 이지러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이란, 선생이 남긴 거의 모든 글을 읽어내는 것 뿐. 여름을 지나는 동안 약전의 글감이라고 옮긴 메모가 A4 80여 장이었다.

이를 허락된 분량 안으로 서사를 꿰어내는 작업은 정제의 연속이었고 선택의 과정은 의심과 싸움이었다. 무엇 하나 쉬 빠뜨려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쓰는 자의 알량한 권능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보다 비워내는 것이 어렵다는 배움은 혹독한 시간을 요구했다.

죽어서도 무언가 일러주는 존재가 있다더니…. 부재로 나의 몽매를 일깨우시는 흰샘이시여…, 나는 연방 사죄를 올린 끝에 약전 집필을 겨우 마칠 수 있었다. 필자만 빼고 익히 아시는 바겠으나, 편년체로 써내려간 약전에는 선생의 웅숭깊은 세월의 일부만이 담겨있다. 딴에 필자가 깜냥 이상으로 무언가 발견했거나 포착하였더라도 이는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속보]미 애리조나서 60년 만의 민주당 주지사 당선, 상하원까지 다 장악
  2. 2겨울시작 '입동'인 7일, 부울경 맑고 쌀쌀… 외출땐 따뜻한 옷 필수
  3. 3[속보]대구서 자신 도우려던 구급대원 얼굴 때린 60대 벌금 700만 원 선고
  4. 4[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5. 5올가을 첫 얼음 관측… 오전 7시 설악산 영하 9도, 횡성 영하 6.8도
  6. 6미래에셋증권도 해킹 사고… 고객 3800여명 임직원 3만5255명 개인정보 흘러나가
  7. 7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1원… 전주보다 0.2원 ↓
  8. 8반여1·4동 어르신과 함께한‘사랑의 자장면 나눔’
  9. 9해운대구 재송2동 릴레이안부봉사단, 2026년 릴레이 다함께 가을소풍’ 추진
  10. 10해운대구 중1동, '술은 잠시 오프(OFF), 건강은 온(ON)’ 절주 캠페인
  1. 1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2. 2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인호 HUG 사장 지명
  3. 3홍익표 정무수석 사의 표명…후임에 최인호 HUG 사장 거론
  4. 4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5. 5김민석, 신천지 논란에 “죄송…조사결과 공개해도 문제”
  6. 6회생인가 촉구 시민 목소리 1차분 6일 법원 제출
  7. 7이 대통령, 법무장관 후보자에 이용철 지명…국세청장엔 안덕수
  8. 8[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소폭 반등한 41%…민주36%·국힘 28%
  9. 9김민석, 신천지 논란 재차 사과…“상처 입은 모든 분께 죄송”
  10. 10'조작기소 특검법' 오늘 與 주도 국회 본회의 처리 전망
  1. 1[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2. 2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1원… 전주보다 0.2원 ↓
  3. 3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4. 4‘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5. 5비에 화약 젖을라 손길 분주…400m 대형 불꽃 ‘카운트다운’
  6. 6부산 외국인 관광객 400만시대 성큼... 카드소비 1조 돌파
  7. 7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8. 8팔란티어 AI와 함께 만든다…부산 신발업체 창신 ‘혁신 점프’
  9. 9비수도권 미분양 적체…LH 매입 신청 86% 탈락
  10. 102005 APEC 이벤트서 대표축제로…100만 인파관리 ‘근육’ 키웠다
  1. 1겨울시작 '입동'인 7일, 부울경 맑고 쌀쌀… 외출땐 따뜻한 옷 필수
  2. 2[속보]대구서 자신 도우려던 구급대원 얼굴 때린 60대 벌금 700만 원 선고
  3. 3올가을 첫 얼음 관측… 오전 7시 설악산 영하 9도, 횡성 영하 6.8도
  4. 4미래에셋증권도 해킹 사고… 고객 3800여명 임직원 3만5255명 개인정보 흘러나가
  5. 5반여1·4동 어르신과 함께한‘사랑의 자장면 나눔’
  6. 6해운대구 재송2동 릴레이안부봉사단, 2026년 릴레이 다함께 가을소풍’ 추진
  7. 7해운대구 중1동, '술은 잠시 오프(OFF), 건강은 온(ON)’ 절주 캠페인
  8. 8'세브란스병원 흉기난동' 50대 여성 구속심사
  9. 9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10. 10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1. 1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2. 2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3. 3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4. 4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5. 5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6. 6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7. 7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8. 8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9. 9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10. 10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기고 [전체보기]
부산 관광 다음 키워드는 ‘건축관광’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공공재
선출 권력 통제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능인선원, 체불임금마저 대여금으로 처리하려 하다니
미 민주당 상·하원 장악…통상·안보 전략 재점검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낯설고도 궁금했던 부산과의 첫 만남
일상으로의 초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오래된 건축이 만드는 새로운 연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