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만큼이나 수도권 집중은 되돌리기 어렵다”는 자조의 시기,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에서 새로운 지방시대 비전을 제시했다. 지난 14일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는 부산국제금융센터에서 ‘지방시대 선포식’을 개최하고 ‘지방시대 비전과 전략’을 발표했다. 지난 7월 10일 출범한 지방시대위의 활동 방향을 윤 대통령이 제시한 것이다. ‘서울과 부산, 두 개 축으로 작동되는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지방시대를 선언하면서 서울이 ‘축’으로 다시 강조된 점은 의아하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를 넘어 충청권까지로 확대된 거대한 수도권은 이미 ‘중심’이므로,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부권을 이에 상응할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의지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지방시대위는 이를 위해 5대 전략과 9대 정책을 내놓았다. 5대 전략은 ▷자율성 키우는 지방분권 ▷인재 기르는 교육개혁 ▷일자리 늘리는 창조적 혁신성장 ▷개성 살리는 주도적 특화발전 ▷삶의 질 높이는 맞춤형 생활복지이고, 9대 정책은 ▷기회발전특구 지정으로 신규 일자리 창출 ▷교육자유특구 도입 및 지역-대학 동반 성장 ▷도심융합특구 조성으로 지방 활성화 기반 구축 ▷로컬리즘 통한 문화·콘텐츠 생태계 조성 ▷지방 주도의 첨단전략산업 중심 지방경제 성장 ▷디지털 재창조로 지방 신산업 혁신역량 강화 ▷매력 있는 농어촌 조성으로 생활인구 늘리기 ▷킬러규제 일괄 해소로 지역 민간투자 활성화 ▷지방분권형 국가로의 전환이다.
9대 정책의 효율적 시행을 위해 ▷세제 혜택으로 수도권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기회발전특구 ▷지방대 육성 등 지역 공교육 혁신을 위한 교육자유특구 ▷역세권 중심으로 지방판 판교테크노밸리를 만드는 도심융합특구 ▷7대 권역별 문화특구 등 4대 특구를 조성하며, 이들 모두 분권형 지방주도형으로 기획되고 운영된다고 강조했다.
큰 틀에서는 지방자치단체에 최대한 권한을 이양해 이제는 국가보다 지방정부 주도로 ‘자율적’인 새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는, 패러다임의 긍정적 변화가 감지된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교육분권’ 성격의 교육개혁을 빼고는 기업 유치를 위한 세제 혜택, 첨단산업 육성, 규제 완화, 문화 콘텐츠 육성 등 종전 정책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방재정력 강화를 약속했지만 재정분권의 핵심인 지방세 확대에 관한 로드맵은 제시되지 않았다.
때마침 부산경실련 등 주최로 지난 19일 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에서 열린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방향과 과제’ 포럼에서도 윤 정부의 지방시대 비전과 정책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발제를 맡은 초의수 신라대 교수는 “전반적으로 혁신성이 미흡하고, 기존과 유사 사업이 많으며, 제시한 정책들을 통해 대전환기 지역문제를 바꿀 수 있을지 ‘큰 그림’이 부족하다. 지역의 저투자·저발전이 규제 때문이거나 세제 혜택이 없어서가 아닌 데다 특구 성격도 애매하다. 가령 기회발전특구는 미국의 ‘기회 존(zone)’이나 ‘약속 존’ 등에서 가져온 개념으로 보이는데, 이들은 저소득 지역을 위한 기획특구펀드에 투자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세제 혜택을 통해 지방에 수도권 기업을 유치하려는 우리나라 정책과 다르며 관련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관해서도 구체성이 미흡하다”고 짚었다.
비대해진 수도권에 맞설 남부권 중심축을 만들겠다면서 정작 그 역할을 수행할 ‘부산 울산 경남 메가시티’가 새 지방정권이 들어선 뒤 어이없이 무산되고, 실체도 내용도 없는 경제동맹으로 바뀐 데 대해서는 단 한 마디의 경고 메시지가 없고, 9대 정책 안에조차 초광역권 조성 관련 내용이 빠졌다는 성토도 나왔다. 또한 지난 20여 년간 이뤄진 지역균형발전 정책 중 인구분산 면에서 가장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되는 공공기관 이전 내용이 쏙 빠진 점이 언급됐다. 물론 윤 대통령이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고, 2차 공공기관 이전이란 새 판을 짜 ‘2차 인구분산’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 정부가 내건 ‘지자체 주도의 지방시대’를 위해서는 지역의 역량 강화도 필수다. 이와 관련, 토론자인 정주철 부산대 교수는 “(중앙집권적이었던) 1980년대까지는 그래도 부산 대구 광주 등 지방이 발전했으나, 지방자치가 시행된 1990년대부터는 오히려 급격히 수도권 집중화가 진행됐다. 부산인구도 (지자체가 출범한) 1995년을 정점(389만 명)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이 ‘역설’은 그만큼 지역이 지방시대를 대비할 역량이 되어 있지 않았고 여전히 미흡하다는 뜻으로, 당면과제를 말해준다.
아울러 저출생 초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변화에 대비해 복지·돌봄 위주로 생활권을 재형성하는 등 새 지방시대에는 미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선언이 ‘말 잔치’를 벗어나려면 좀 더 지역에 천착한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선정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