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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역사 전쟁과 자유론

정대성 부산대 역사교육과 교수

  • 정대성 부산대 역사교육과 교수
  •  |   입력 : 2023-09-24 19:33:57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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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 문제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정치인들이 특히 목소리를 높이고 진영은 첨예하게 갈린다. 급기야 역사가 단체들이 들고일어나 반대 성명서도 발표했다. 역사 전쟁, 기억 전쟁이 따로 없고 ‘무기로서의 역사’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문구도 소환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그래서 현재의 권력은 과거를 지배하려고 한다. 대체로 지지 기반이 약할수록 역사에 더 집착한다. 통치의 정당성을 과거에서 찾아 현재의 권력을 지키고 미래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권력자나 이해 관계자가 과거를 현재의 무기로 삼을 때면 역사는 으레 오용되고 만다. 무엇보다 현실적 필요를 위해 전체 맥락에서 떼어내 일부만 강조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의 소련공산당 입당 경력도 그런 경우이다. 흉상이 육군사관학교에 있기 어려운 이유로 드는 주요 근거다. 다른 곳은 몰라도 분단 상황의 주적이 분명히 정해진 군인 양성소 육사에는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다. 주적으로 꼽는 북한의 탄생과 어떤 연결점도 없는 홍 장군의 항일투쟁 경력은 반공주의 이념의 부흥 속에 쉽사리 얼룩진다.

이번 흉상 철거 주도자가 육사의 뉴라이트 교수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뉴라이트가 누구인가. 거센 비판 속에 좌초한 2015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의 주체였다. 나아가 일제강점기에 우리 스스로 못 이룰 근대화를 일본이 해주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을 떠받드는 이들이다. 그 ‘이론’의 대변자들은 강제 동원이나 일본군 ‘위안부’ 같은 만행과 수탈을 애써 축소하고 오히려 괄목할 경제발전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1960년대 이후 한국 고도성장의 뿌리가 식민지 시대의 근대화라고 보고, 해방 후 독재의 무단통치와 인권탄압 대신 경제성장을 부각하는 역사 인식을 갖는다. 일제강점기 및 독재 시대를 미화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게다가 식민 지배 정당화를 위해 일본 학자들이 먼저 주창한 역사해석이다. 그렇다 보니 박정희 백선엽의 일본군 장교 경력에는 별로 문제가 없는 대신, 일제와 친일파에 맞선 홍 장군의 일부 경력은 중대한 결격사유가 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해당 육사 교수가 SNS에 공유한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옹호하며 ‘자유는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되어야 하는데 독재라고 매도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놀라운 ‘자유론’이야말로 독재와 전체주의 세력이 억압한 자유의 의미를 일깨운다. 스탈린 전체주의가 정치범을 수용소에 가두고 제한한 자유, 나치 전체주의가 유대인에게 노란 별의 부착을 강제하며 허용하지 않은 자유 말이다. 그렇게 무도한 권력의 ‘자유’는 무참한 억압과 학살의 역사로 이어졌다.

현 정권에서 자유는 급기야 새로운 차원으로 비약했다. 정권 비판자나 노동 및 시민단체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공산 전체주의’나 ‘반국가 세력’으로 호명된다. 비판적인 언론은 무차별적인 압수수색의 자유에 종속되고, 모든 문제는 앞선 정권 탓이기에 대통령과 정부는 엄중한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린다. 반면, 홍범도 장군은 역사의 세찬 소용돌이 속에서 얻은 공산당 이력으로 기나긴 항일투쟁의 업적을 모멸하는 자유의 희생양이 되었다.

역사에서 냉전 분단의 상징이었다가 평화통일의 수도로 거듭난 베를린은 2017년 관용과 개방의 ‘자유 베를린 캠페인’을 벌였다. 약 100년 전 베를린에서 우익 의용군에 살해된 비운의 혁명가이자 독일 ‘공산당’의 창시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초상화와 문구를 담은 포스터가 시내 곳곳에 나붙었다. “자유는 언제나,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다!” 시민의 반대는 없었다. 지배 권력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자유는 늘 권력과 폭력에 억압받은 이들의 자유를 인정하는 쪽으로 흘러왔다. 역사의 심판은 대체로 늦게 이루어지지만 언제나 단호하고 결정적이다. 희대의 폭군 연산군이 ‘오직 두려운 것은 역사뿐’이라고 말한 이유다.

역사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금석이다. 그래서 역사는 ‘지나간 미래’라고 한다. 미래는 과거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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