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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사적 공간의 미학

예술가들의 ‘사적 공간’, 우리에 과감히 드러내

무심코 지나는 순간들 가치있단 것 깨닫게 해

배미애 갤러리이배 대표

  • 배미애 갤러리이배 대표
  •  |   입력 : 2023-09-20 19:38:31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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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삶의 반영이며, 삶의 과정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가들이 작품을 창작하는 행위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며, 예술작품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일상에 진지한 질문들을 던지기도 하고 새롭게 전개될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한다. 2006년 인천의 사동에 위치한 버려진 한 작은 가옥에서 진행된 설치미술가 양혜규(1971-)의 한국 최초 개인전 ‘사동 30번지’는 이런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전시로 기억된다. 작가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살았던 지극히 사적인 공간(방)에서 자신이 경험해 온 삶의 정서와 사유를 드러낸다. 은밀하게 전시의 여정을 함께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지극히 평범했던 사적인 삶과 공간의 일부가 예술이 되는 과정을 목도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는 동시에 스스로가 예술에 편입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1889-1976)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을 드러낼 특정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실현되어 특정한 형태를 갖는 구체적인 존재(현존재·dasein)가 된다. 현존재는 항상 특정 장소에서 특정 방식으로 존재하는 현실적인 존재이며, ‘지금-여기’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공간적으로 의미를 획득한다. 하이데거에게 현전하고 부재하는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자리로서의 빈터는 공간의 본질이며 존재의 토폴로지, 즉 존재의 진리가 드러나는 의미 공간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러한 장소 개념은 특히 인간의 거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존재의 토폴로지는 인간의 일상적 삶이 영위되는 공간, 즉 역사 문화적으로 특수한 개별적이면서도 사적인 물리적 혹은 심리적 의미 공간인 것이다.

개개인에게 사적 공간은 기본적으로 사색하고 사유하는 공간이다. 자의식을 기반으로 스스로를 진단하고 성찰하면서 자신의 삶을 공고히 구축해 나가는 공간이다. 이러한 사적 공간을 인식한다는 것은 공간 안의 자신의 존재와 그 주위의 관계성을 끊임없이 고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자신만의 특정 공간을 의식하고 의미를 불어 넣으려는 시도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질문하는 것과 같다. 각자의 사적인 공간을 분리하고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경계를 짓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공간에 대한 물리적 이해뿐만 아니라 정서적 인지에서 비롯된 공간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으로 인해 공공 영역이 사적 공간으로, 사적 공간이 노출되어 소통을 교류하는 공공 영역이 되기도 하면서 ‘공적’과 ‘사적’ 공간의 경계를 와해시킨다.

예술적 의미에서 공간은 시대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며 가시적인 물리적 공간과 비가시적 심상 공간을 아우른다. 예술가의 사적 공간이 예술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예술가 개인의 삶 자체가 창작의 원동력이 되고 그들이 가진 가치관 인생관 철학 사고방식 등은 다양한 표현매체나 메타언어를 통해 예술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사적 공간 역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공간으로 공유되면서 예술가들의 의지가 능동적으로 개입한 공적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과 공유되는 공공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사적 경험이 더해져 자신들만의 사적 공간이 되기도 한다. 현대 도시인의 내면에 깃든 고독 소외 상실 등을 표현한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특히 사적 공간에서 외부로부터 단절된 듯한 인간들을 묘사함으로써 외부와의 소통에 대한 갈망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Night Windows’(1928)에서는 은밀한 사적 공간을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마치 프라이버시를 침해받는다는 인상을 주지만 이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의 고독이 모두 그러하다는 공적 공감을 이끌어낸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영구적으로 소장하는 몇 안 되는 한국 작가의 작품 중에 양혜규 작가의 ‘살림’(2009)이 있다. 1평 남짓한 정육면체 공간에 자신이 사는 베를린 집의 부엌을 소재로 너무나 평범한 자신만의 살림살이들을 진열해 놓은 이 작품은 사적인 공간이 공적으로 공유됨으로써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를 허문 작품이다.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여 타자와의 소통을 기대하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뛰어난 작품으로 개별적 인간 존재의 삶과 그들이 속하여 생활하고 사유하는 사적 공간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우리가 이 작품에 공감하는 이유는 ‘삶이 곧 예술이다’는 다소 통속적인 뉘앙스를 지니지만 삶의 가치를 다시 새겨볼 만한 이 문장에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무심히 지나가는 평범한 삶의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 가치를 지니는지를 깨닫게 하고 미적 접근으로 그들의 사적 공간을 과감히 개방하여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의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예술가들의 노력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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