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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천고마비 계절에는 마음의 허기 채우자

김민경 당근정신건강의학과 원장

  • 김민경 당근정신건강의학과 원장
  •  |   입력 : 2023-09-19 19:23:36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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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돌아가는 하루를 버텨내다 보면 어쩌면 오롯이 위안받는 시간은 늦은 저녁일 것이다. 눈 뜨자마자 부리나케 챙겨서 학교나 직장으로 향해 정신없이 보내다 점심도 대충 때우기 일쑤이고 밤늦게 귀가해서야 겨우 한숨을 돌린다는 사람이 많다.

학업이나 업무에 대한 압박감,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초조함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맛있는 음식을 떠올린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움직이고 활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하는 목적에서 식사했다지만, 지금은 다르다. 속상하고 화나고 마음이 답답할 때, 또는 졸리거나 무료하거나 심심할 때 우리는 맛있고 달콤하고 매콤한 것을 떠올린다. 한밤중은 물론이고 언제 어디서든 배달로 원하는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 짜증 나고 화날 때는 매콤하고 땀을 뻘뻘 흘릴 수 있는 매운 요리가 제격이다. ‘음식이 술이나 마약도 아니고 하루의 피로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푸는 게 뭐 어때서?’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어쩌다가 간혹’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매운 음식과 달콤한 음식을 곁들여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일정한 습관대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속상하거나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효과적으로 가라앉은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을 반복하게 된다. 우선 달콤한 음식은 우리 몸에서 빠르게 에너지로 쓰인다. 더불어 뇌에서는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물질을 분비하는데 그 부위는 술이나 마약을 했을 때도 활성화되는 뇌의 보상회로이다. 반면 매운맛은 일종의 맛이라기보다는 통증에 가깝다. 혀를 자극해서 통증을 느끼게 하고 얼얼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은 캡사이신과 같은 물질이다. 매운맛이 통증이라면 왜 우리는 통증을 느끼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고 느낄까? 그것은 우리 몸의 보호 반응이다. 몸에 상처가 났을 때, 혹은 매운 음식을 먹어서 혀에서 얼얼한 통증을 느낄 때 그 감각을 줄이기 위해 우리 몸에서는 통증을 완화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물질이 분비된다. 어찌 보면 마음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신체 고통을 일으키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습관을 지닌 사람들은 과연 만족스럽고 행복할까? 상담실을 찾는 많은 내담자가 자기의 문제를 잘 알고 있지만 그 고리를 잘 끊지 못한다. 즉시 만족감을 주는 것은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음식의 양이나 자극은 점차 그 강도를 높여야 한다. 한 연구에서는 달달한 음식을 자주 먹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에 각각 아이스크림을 한 개 먹게 하고 뇌 영상 촬영을 했다. 뇌 보상회로가 어느 쪽이 더 자극이 되는지 본 것이다. 흔히 과식이나 폭식을 하는 사람들의 뇌가 더 자극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이다. 이 결과를 해석해 보자면 단 음식을 폭식하는 사람은 반복해서 과도한 음식을 먹은 결과 작은 양에는 뇌가 잘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아이스크림 한 개에 만족하지 못하고 5개, 심지어는 큰 통 하나를 먹어 치우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식이나 폭식하지 않고 마음의 허기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우선 그 시작은 언제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특히나 힘든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채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렇지 않기도 한다. 그 차이는 그 상황을 얼마나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다고 느끼는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상대나 자신에게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스스로 무기력하다고 느끼거나 혹은 스스로나 상대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큰 스트레스로 머릿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일을 하면서 무례한 사람을 만났다고 치자. 이건 내가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길을 걸어가다 발에 돌이 차이는 것과 같다. 최선을 다하더라도 나에게 힘든 상황이 닥칠 수 있다. 그 순간을 완벽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있거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기준이 있다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짊어진 내 어깨 위의 무게를 과감히 덜어내고, 천천히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여유로운 하루가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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