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바리, 살구받기, 감자투생이. 근래에 알게 된 단어들이다. 어쩌면 은연중에 이미 접해봤을 단어들일 수도 있지만, 최근에서야 이 말들이 귀에 확 걸리고 마음에 쏙 들어왔다. 종이에 박힌 텍스트가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로 들었기 때문이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의 입을 통해서 이 단어들이 흘러나올 때,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크게 뜨며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뭐예요?”
진도바리, 감자투생이, 살구받기. 이 세 가지 단어를 보고 단번에 ‘아하’하고 알아차린 분이 계실지 궁금하다. 진도바리는 유년 시절을 영도 청학동에서 지낸 분을 인터뷰하던 중 듣게 되었다. 진도바리에 밀가루를 묻혀 찜통에 찐 후 초장에 찍어 먹었다고 하셔서 처음엔 꽈리고추찜 같은 채소 반찬인가 생각했다. 알고 보니 표준어는 ‘진두발’. 홍조류 돌가사릿과에 속하는 해조류의 한 가지였다. 1960, 70년대 청학동 앞바다에선 진도바리를 쉽게 채취할 수 있어서 인터뷰이의 어머님께선 진도바리 찜을 밥상에 자주 올리셨다고 한다.
살구받기는 남구에서 마을 기록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주민분이 알려주신 단어다. ‘공기놀이’의 부산 방언. 부산 사람들에겐 익숙한 말이었을 텐데 제주 출신인 나는 ‘살구받기’의 의미를 몰라 되물었던 것이다. 한편, 감자투생이는 강원도가 고향인 분께서 회상하는 추억의 음식이다. 감자범벅, 감자떡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음식이라, 마치 스무고개 하듯 질문과 답을 주고받은 끝에서야 비로소 그 맛과 질감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매 순간순간이 한 조각의 기억이라면, 이 기억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의 언어로 명명되어 머릿속에 저장된다. 먼 훗날 그 기억을 다시 꺼내어 펼칠 때, 그 안에서는 나라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지역의 이야기도 함께 뒤엉켜 발견될 수밖에 없다.
진도바리 찜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할 때, 당사자의 눈앞에는 젊은 어머니의 얼굴과 오래전 보았던 영도 해안가의 파도가 동시에 펼쳐졌을 것이다. 살구받기를 말하는 이의 머릿속에선 일곱 살 여자아이가 문현동 골목 골목을 누비며 뛰놀고, 감자투생이를 떠올릴 때 그의 귓가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강원도 말씨가 맴돌며 그를 옛집의 부엌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 기억을 공유받은 나는, 거기에 깃든 정서를 간접 체험한다. 타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파도 소리와 소금기 어린 바람과 골목의 흙냄새와 부엌의 온기를 오롯이 느낀다면 거짓이겠지만, ‘부산’이나 ‘강원도’ 같은 지역 정보를 사전적 개념처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와는 분명 다른 경험이다. 빛바랜 지역의 과거는 그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의 추억이 더해질 때 다시금 색채를 부여받고 생기를 띠며 펄떡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일련의 깨달음을 통해 그동안 아키비스트로서 해왔던 활동을 반성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아카이브는 민간의 자발적인 움직임보다는 관 주도의 성격이 강하다. 시에서는 다른 시가 아닌 ‘우리 시’의 기억을, 구에서는 ‘우리 구’만의 기억을 수집하길 원한다.
“어르신, 그거 말고. 우리 동네랑 관련된 건 없어요?”, “장은 어디서 보세요? ○○시장이요? 거기는 다른 구라서 안 되는데.” 이는 지금껏 내가 해왔던 실수다. 눈앞의 대상이 사람임을 잊고,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기억을 뱉어내는 자판기인 양 지역의 이야기가 내 손 안에 뚝 떨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기억의 주인공인 주민의 삶 속에서 지역의 이야기만 싹둑 잘라갈 수는 없다는 것을. 시간과 예산이 한정적인 아카이브 사업에서 지역성이 담보되지 않은 개인의 일상사를 듣는 것은 비효율적인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느린 길에서 우연처럼 생생한 지역사를 맞닥뜨리게 되기도 한다. 부산 사람에게는 ‘정구지’의 추억이 있고, 전라도 사람에게는 ‘솔’의 추억이, 제주 사람에게는 ‘새우리’의 추억이 있다. 똑같은 부추라 해도 각자가 품은 추억의 향은 다르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 향의 추억을 품고 있는지. 이제는 질문지마다 빼곡했던 ‘지역’을 지우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당신 앞에 서고 싶다. 존중의 마음과 경청의 태도를 고루 갖춘 기록자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