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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김영란법 없는 세상

  • 강춘진 기자 choonjin@kookje.co.kr
  •  |   입력 : 2023-08-30 19:12:55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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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초반 ‘벤츠 여검사’ 사건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사건은 여자 검사가 내연 관계인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로부터 벤츠 자동차와 샤넬 핸드백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검찰은 여검사가 변호사에게 금품을 받고 뒤를 봐준 것이 알선수재죄에 해당한다며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가성이 없다’며 무죄를 판결했다. 법원은 벤츠를 ‘사랑의 징표’라고도 했다. 당시 현행법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했던 게다. 앞서 터진 ‘스폰서 검사’와 ‘그랜저 검사’ 사건 등 법조 비리에 사법부가 법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국민적 비판이 일었다. 이를 계기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탄생했다.

이 법은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도 공직자의 금품수수를 처벌토록 해 공직사회 비리를 뿌리뽑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궁극적으로는 공직사회는 물론 언론, 교육계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유착관계에 따른 ‘접대 문화’를 근절하겠다는 의도가 강했다. 그동안 법으로는 접대가 뇌물의 영역에 속하지 않았다.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금(현금) 5만 원, 화환+경조금 10만 원’. 금액한도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등 반발도 심했다. 법 시행 전에 여러 단체에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사를 청구했다. 2016년 7월 28일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김영란법은 그렇게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됐다.

사회적으로 변화가 생겼다. 일단 ‘검은 돈’이 활개 치는 분위기가 사라졌다. “내 돈 내고 먹겠다”는 더치페이도 확산했다. 학교에서는 학부모 금품 제공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다. 시간이 흘러‘ 식사비 3만 원, 선물 5만 원’의 현금 가치 하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설·추석 농수산물 선물 가격 상한액을 종전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올린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이 30일부터 적용됐다. 5만 원 한도 내에서 프랜차이즈 식품 온라인 쿠폰과 문화관람권도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반면 최대 관심사였던 ‘1인당 식사비 3만 원’은 이번에도 개정되지 않았다. “식사 금액을 올려야 한다는 국민 정서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법 시행 당시 책정된 금액한도를 놓고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공직사회 부패와 전근대적인 접대 문화가 발 붙이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논란도 사라질 것이다. ‘김영란법 없는 세상’이 당장 올 것 같지는 않다. 현실 변화를 반영하는 탄력적인 법 운영이 필요하겠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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