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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라듐 걸스’와 마리 퀴리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  |   입력 : 2023-07-30 19:17:0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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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 미국 뉴저지주의 뉴어크에 ‘시계 스튜디오’라 불리는 공장이 있었다. 시계 숫자판에 라듐을 입히는 곳이었다. 야광 물질인 라듐을 칠하면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이기 때문에 시계는 물론이고, 사격 조준기, 비행기 계기판, 선박용 나침반에 널리 쓰였다. 공장은 임금을 아주 많이 주었기에 일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근로자들은 대부분 10대 소녀들이었다.

소녀들은 가느다란 붓 끝에 라듐을 살짝 묻혀 숫자판에 칠했다. 라듐을 정확히 칠하기 위해 라듐 묻은 붓끝을 입술로 뾰족하게 세웠다. 임금은 성과급이어서 소녀들은 열심히 칠했다. 퇴근 후 어두운 거리를 걸어가면 소녀들은 입술에 묻은 라듐이 은은한 빛을 냈다. 언젠가부터 그녀들은 ‘라듐 걸스’라 불린다.

라듐(88Ra)은 1898년에 마리와 피에르퀴리 부부가 발견했다. 평생 라듐을 연구한 마리 퀴리는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아름다운’ 라듐에 매료되어 호주머니나 책상 서랍 속에 보관했다. 어느덧 그들은 손과 피부에 걸핏하면 화상을 입었다. 피에르는 라듐에서 나온 기체가 실험동물을 죽일 정도로 유독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마리도 주변에서도 요절하는 과학자들이 속출하는 것을 보고 연구원들에게 방호복 착용을 지시했다. 에디슨도 라듐을 두려워했다. 시계 스튜디오의 창업자도 라듐 때문에 손가락을 절단했다. 회사에서도 어느 정도 위험성을 인식했지만 직원들에게는 안전하다고만 했다.

우연히 라듐이 암세포를 태워 없앤다는 사실이 발견된 후 라듐 자체가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퍼졌다. 사람들은 ‘자연산’ 만병통치약 정도로 여겨 라듐이 들어간 알약 음료나 우유를 만들고 치약 화장품 스파에도, 심지어는 속옷에도 넣었다. 라듐은 날개 돋힌 듯 팔려 100년 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질이 된다. 그러니 스튜디오에 다니는 소녀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근처에 갈 수도 없는 라듐을 접촉하는 것은 물론이고 섭취까지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소녀들에게 전신 피로감, 혈액 이상, 체중 감소, 잇몸 궤양, 턱뼈 괴사가 생겼다. 1922년 당국이 직업병으로 조사를 시작했고 라듐의 유해성을 의심한다. 회사는 인정을 하지 않았다. 사장은 오히려 “25년 동안 라듐을 다루고 연구한 마리 퀴리가 건강한 것을 보라”며 항변했다. 하지만 그가 몰랐던 것이 있다. 마리 퀴리는 건강하지 못했다.

결국 세상을 떠난 소녀들이 나왔고 시신에서도 엄청난 방사선이 검출된다. 지루한 소송이 이어지는 사이 더 많은 피해자가 나왔다. 1928년이 되어 회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합의금을 내놓는다. 이렇게 라듐의 위해성이 알려지면서 1932년 의약품 목록에서도 퇴출되고 라듐 산업 자체가 몰락한다. 마리 퀴리도 라듐 걸스의 비극을 전해 들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라듐이 그 끔찍한 일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고 어떤 심경이었을까? 그는 라듐이 묻은 붓끝을 입에 대지 말고 소의 간을 날로 먹어 빈혈을 예방하라는 조언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도 라듐 걸스와 같은 운명을 짊어졌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라듐이 찬란하게 몰락하던 그 무렵 마리 퀴리도 세상을 떠난다(1934년). 사인은 재생불량성 빈혈이었다. 과학자들은 방사선 연구의 희생자로 생각한다. 마리는 평생 방사능 물질을 연구했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선에 가서 직접 X-선 촬영 기사일도 했다. 물론 아무런 방호장비 없이 말이다. 지금도 퀴리 부부의 관은 프랑스 위인들의 영묘인 파리의 팡테옹에 안치되어 있다. 부부의 관은 특별히 납으로 차폐되어 있다. 물론 지금도 내뿜어져 나오는 잔존 방사선 때문이다.

방사선 연구 역사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얻은 교훈 하나는 우리가 많이 모른 채 너무 나갔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니라고 감히 자신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섣부른 행동보다는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가지면 좋겠다. 최근 방사능 문제를 두고 많은 이가 자신의 주장을 과학적이라고 항변하는 것을 본다. 하지만 과학은 결과만의 일이 아니라 태도와 방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과학적이지 못한 수단으로 과학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비과학이다. 정말 ‘과학적’으로 후쿠시마 문제를 설명해 줄 전문가는 없을까? 국민은 알 권리가 있고, 과학자들은 잘 설명해 줄 사회적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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