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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가족에게 감사의 꽃을 드립니다

  • 이해인 수녀·시인
  •  |   입력 : 2023-05-18 19:47:52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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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재 자체로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분.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밤낮으로 일터에서 노심초사하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께 오늘은 노란 해바라기 꽃을 드립니다.
사진가 박정화가 찍은 수녀원 사진. 이해인 수녀·시인 제공
남몰래 고민하며 한숨 쉬던 삶의 무게도 잠시 내려놓고 해바라기처럼 해를 바라보셔요. 둥근 마음으로 하늘을 보셔요. 아버지는 우리가 바라보는 지상의 멋진 해님입니다. 많은 말보다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그 숨은 노고를 사랑합니다.

존재 자체로 우리의 고향이 되어주는 분. 가족들을 보살피느라 밤낮을 깨어 사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께 오늘은 고운 장미 한 다발 바칩니다.

아픈 가시조차 향기 속에 숨기는 장미는 곧 어머니의 꽃입니다. 항상 자신보다는 가족들을 먼저 챙기며 희생하고 헌신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우리가 바라보는 지상의 천사이며 달님입니다. 잠시라도 안 보이면 금방 시무룩해지는 우리의 ‘영원한 우상’이며 ‘애인’인 어머니를 5월의 신록처럼 싱그럽고 푸르른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이름만 불러도 금방 평화가 느껴지고 위안이 되는 이 땅의 언니와 누나들에게 오늘은 분홍 안개꽃 한 다발 드립니다.

조롱 조롱 이야기가 많고 아기 자기 정겨운 그대들. 동생들을 사랑하며 엄마 아빠 대신해서 살림도 살 줄 알고 부모님 대신 잔소리도 곧잘 하는 한 가정의 비서이며 심부름꾼들인 언니와 누나들이 있어 우리의 삶이 한결 부드럽고 풍요로움을 감사합니다.

곁에 있으면 든든하고 무슨 일이라도 해결해 줄 것 같아 의지가 되는 이 땅의 오빠와 형들에게 오늘은 하얀 백합 한 다발 드립니다.

백합처럼 순결하고 정의로운 나팔을 곳곳에 불어주세요. 어려운 일 생기면 부모보다 앞서 걱정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며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성실한 오빠와 형들이 있어 우리의 삶이 한결 따뜻하고 너그러워질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철없이 어리광 부리고 때로는 말썽도 피우지만 모든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 땅의 모든 어린 동생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오늘은 진분홍빛 패랭이꽃 한 다발 전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존재 자체로 드러내며 사랑을 많이 받아 사랑도 할 줄 아는 사랑스런 그대들 있어 우리의 삶이 더욱 재미있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고마워합니다.

아들 딸을 위하고 손자 손녀들을 끔찍이 아끼시는 이 땅의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오늘은 보랏빛 등꽃을 드립니다.

길게 늘어지는 겸손한 ‘등꽃타래’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며, 날마다 기도의 꽃등을 밝히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푸근한 정이 있어 우리의 삶이 지치지 않고 쉬어갈 수 있음을 새롭게 감사합니다.

조카들을 챙기고 위해주는 이 땅의 이모 고모 숙모 삼촌들에게 오늘은 향기가 아름다운 라일락을 드립니다.

우리의 엄마 아빠들과 얼굴도 비슷하고 성격도 많이 닮아 서로 자주 못 만나고 멀리 있어도 늘 정답게 느껴지는 분들. 먼 데까지 향기를 전하는 라일락처럼 고운 정 날려주며 집안의 대소사에 함께하는 이모 고모 숙모 삼촌들 있어 우리의 삶이 외롭지 않음을 고마워합니다.

일 년 사계절을 사랑하지만 꽃과 나무들이 아름다운 5월에는 우리의 가족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사랑하세요! 가족이 곁에 있어 행복한 우리들, 가족 없는 사람들에겐 사랑으로 다가가는 좋은 벗이 되고 혈연을 넘어서도 가족이 될 사랑의 궁리를 해 보세요. 저도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2.

서로 혈친으로 연결되진 않았으나 수도원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 또한 서로를 가족이라 부릅니다. 아침에 같이 일어나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기도하고 일을 하는 우리는 또 하나의 가정공동체로 사랑을 배우고 익히며 서로의 성숙을 도와줍니다.

이 사랑은 수도원을 넘어 세상을 향해 더 확산이 되고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가족으로 품어 안고 좀 더 넓고 깊은 사랑의 주인공이 되고싶어합니다.



지금 제가 살고있는 부산 광안리 본원에는 약 130명의 수녀들이 살고 있는데 각자 자라온 배경도 고향도 성격도 모두 다르지만 한 식구로 정답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함께 사는 이들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 궁리하는 것 또한 일상의 삶을 탄력 있게 해 주기에 날마다 명단을 보고 또 보는 것이 어느새 소중한 취미가 되었습니다.

가만히 이름을 들여다보면 그 이름의 주인공에게 필요한 기도 제목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가 평소에 갖고 싶다고 불쑥 말했던 어떤 물건이 떠올라 구해볼 때도 있으며 최근에 직면하고 있는 몸과 마음의 아픔 같은 것들이 감지되어 부랴부랴 위로의 글을 준비할 때도 있습니다. 함께 사는 수도 가족들에게 둥글게 고운 수국 한 다발 바치는 마음으로 마더 데레사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사랑은 가족에서부터 시작합니다…우리 가족 안에 대단히 불쌍한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그들을 몰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미소를 지을 시간도, 서로 이야기할 시간도 없이 지냅니다. 먼저 우리 가정에 사랑과 자비심을 가져옵시다.”

“위대한 사랑의 실습장인 가정은 첫 번째 학교다. 기정이야말로 사람들이 생생한 경험을 통해서 사랑을 배우는 영구적인 학교다”고 역설한 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어록도 다시 되새김해 봅니다.



3.

제가 쓴 글이지만 해마다 5월이 오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번씩 읽어보는 감사의 단상으로 이 칼럼을 마무리하는데 하얀 찔레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와 행복한 아침입니다.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에서 섬세하게 표현하며 살 줄 알게 하소서. 서로 고마운 것은 고맙다 하고 잘 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이고, 그리움이고, 기쁨인 것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서로의 결점과 허물을 감싸 안는 따뜻함과 너그러움으로 끝까지 기다리며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아픔이고 눈물이고 기도인 것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힘든 상황과 시련 중에도 서로를 내치지 않고 함께 목숨 바쳐 서로의 짐을 기꺼이 지고 나누는 ‘고통 속의 축복’에 이르게 하소서.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연민이고, 용서이고, 화해인 것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시선을 넓히고 마음을 넓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펴는 인류애를 실천하는데 인색하지 않게 하소서. 함께 길을 가는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나눔이고 봉사이고 헌신인 것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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