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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그림과 검은 돈

  • 강필희 기자 flute@kookje.co.kr
  •  |   입력 : 2023-05-07 19:23:4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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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최욱경(1940~1985)은 강렬한 색과 대담한 선으로 추상을 그린 대표 여성 작가다. 서울대 미대 졸업 후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견고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서울 토박이지만 대구 영남대에 첫 직장을 잡았고 부산의 언론·문화인과도 깊이 교류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그녀가 사후 20년이 훌쩍 지나 뜻하지 않은 대목에서 소환된다. 2009년 터진 ‘국세청 그림 로비 의혹’ 사건이다. 국세청 고위직 부인들이 남편 인사를 앞두고 주고 받았다는 선물로 최욱경의 ‘학동마을’이 언급된 것이다. 생전 자주 들렀던 거제 앞바다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선물을 제공한 쪽은 500만 원에 샀다고 했지만 당시 시세는 수천만 원이었다고 한다. 뇌물이라는 의심을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림은 유일하게 돈이 되는 예술 장르다.” 부산의 한 유명 갤러리 대표에게서 들은 말이다. 그림과 돈이 매우 친한 건 사실이다. 국내 굴지의 재벌 중에 자체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없는 곳을 찾기 힘들다. 리움(삼성)을 비롯해 아트선재센터(대우) 성곡미술관(쌍용) 금호미술관(금호) 아트센터 나비(SK) 등은 미술계 영향력 또한 상당하다. 재벌가 안주인이나 자녀, 친인척 중에는 예술 전공자가 많고 작품 안목 또한 뛰어나다.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문화활동을 후원한다는 명분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계기는 역설적으로 비자금 탈세 불법증여나 상속 등 부정적인 단어와 결합될 때였던 게 사실이다.

최근 세간에 화제인 SG증권발 주가 폭락과 주가 조작 의혹 사건에도 ‘그림’과 ‘갤러리’가 등장한다. 모 투자사 대표가 수조 원대 자금을 편법으로 유치해 굴리다 손실을 입었는데, 수익금을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골프연습장과 갤러리 등을 통해 세탁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익이 나면 통상 투자자에게 지급해야 하지만 골프회원권이나 그림을 돈 대신 줬다는 것이다. 일부 투자자는 현물을 받은 일이 없다며 오히려 매매를 가장한 탈세 의혹을 제기하는 중이다.

요즘 미술시장에 불고 있는 아트테크는 MZ세대의 유용한 재테크 수단이다. 그림 값의 본질은 작가 유명세나 작품성 같은 무형의 가치다. 유명 작가라도 특정 작품에 대해서만은 값이 낮게 책정되기도 하고, 뒤늦게 발견된 의미로 인해 갑자기 뛰기도 한다. 가격을 매기기 어려운 속성이 검은 돈과 엮이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은 예술품이 부정한 거래의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걸 알면 작가는 어떤 생각이 들까.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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