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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명태 산업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   입력 : 2023-04-23 18:57:32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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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명태는 정말 쓸모가 많은 생선이었다. 생태나 동태는 국 찌개 찜 전 무침 등으로 먹었다. 명태를 말린 북어와 황태는 술 좋아하는 민족에게는 둘도 없는 요긴한 식재료였다. 제사상이나 고사상에도 올랐고 명주실로 꿰어 집안 곳곳에 걸어두면 액막이 역할도 했다. 황태를 곱게 부숴 얌전하게 뭉친 황태 보푸라기는 격식을 차린 주안상에서 빠지지 않는 안주였다. 명태를 말리기 위해서는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는 ‘할복’ 작업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때 나오는 부산물 역시 모두 젓갈로 활용했다. 조선시대에 명태는 거대한 산업이었다.
1960년대 강원 속초에서의 명태 할복 작업 모습. 출처=속초문화원
조선시대 명태 산업의 중심지는 함경도 원산이었다. 원산은 명태어업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명태를 말리고 젓갈을 만드는 가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원산에서 가공된 명태는 가장 큰 소비시장인 한양으로 몰렸다. 규모가 큰 보부상단이 한양과 원산을 오가며 황태 북어 젓갈 등을 지게로 옮겼다. 원산의 겨울은 혹독했다. 이 혹독한 기후가 오히려 명태를 말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명태가 선창에 도착하면 곧바로 할복작업을 시작했다. 할복작업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었다. 차가운 겨울에 손이 꽁꽁 얼어붙는 힘든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 힘겨운 작업에 임금이 별도로 지급되지 않았다. 명태의 배를 가르면 명란(알) 이리(정소) 간(애) 창자가 나온다. 명란은 예나 지금이나 명태보다 높은 가치를 가졌다. 따라서 명란은 명태를 잡은 선주의 몫이었다. 명태 간에서 추출한 간유는 그을음이 적어 호롱불의 연료로 인기가 높았다. 간은 모두 명태를 말리는 덕장 주인이 가져갔다. 남는 것은 이리와 창자. 이것은 할복 작업을 하는 여성의 몫이었다. 이리는 가족들이 먹고 창자는 소금에 절여 젓갈 상인에게 넘기면 오히려 임금보다 나았다. 이는 이미 조선시대 수백 년 동안 지켜져 온 구조였다.

이런 질서에 첫 번째 균열이 생긴 것은 일제 강점기였다. 일본에서 원산으로 온 어민과 상인들은 동력선과 근대식 어업으로 원산의 명태잡이를 독점했고 이어서 명태 산업도 독점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명란이었다. 일본인의 식생활에 조선식 명란젓은 밥반찬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기존 산업 시스템을 유지하되 소금에 절여 옹기에 담은 명란은 모두 일본으로 가져갔다. 경원선과 경부선을 이용해 부산 초량에 도착한 명란은 부관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로 갔다. 이때부터 일본인의 밥상에 명란젓이 오르기 시작했다. 일본인은 명란젓에 열광했고 100년이 지난 오늘날 일본의 명란 산업은 한국의 20배 정도 규모로 성장했다.

명태 산업의 두 번째 균열이 생긴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함경도 출신 피란민들에 의해 명태 산업의 중심지는 함경도 원산에서 강원도 속초로 옮겨왔다. 장소는 바뀌었지만 시스템은 원산과 동일했다. 명태 산업의 세 번째 균열은 1970년대 이후부터다. 우리 동해에서 명태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한국인이 소비하는 명태는 전량 러시아 오호츠크해에서 잡힌다. 명란은 모두 오호츠크해에서 러시아 선원들에 의해 적출된 다음, 냉동상태로 부산 감천항으로 온다. 매년 3월~5월 감천항에서는 러시아의 명란을 두고 한국과 일본의 바이어들이 모여 경매가 이루어진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유지되던 명태 산업이 지난 100년 동안 너무 급격히 변했다. 비단 명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의 전통음식 대부분이 그 사정을 들여다보면 명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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