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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도청도설] 곰배상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3-03-20 19:57:4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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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선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책 ‘유신 그리고 유신’(메디치)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일본 근현대 그리고 한일 관계를 다룬 기존 책과 완연히 다른 관점을 보여줬다. 남다른 시각에서 주제를 깊숙이 찔렀고, 통찰력과 설득력을 함께 발휘했다. 일본이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닿은 곳이 메이지유신이며, 메이지유신 영향으로 일본·한국·세계는 이런저런 변화를 겪었다는, 기존 설명의 경로를 이 책은 따라가지 않는다.

그 대신 (메이지) 유신 자체부터 주목한다. 유신의 본질, 유신의 정념을 밝히고 직시하면서 그것이 마치 생명체처럼 자신을 확장하기 위해 몸부림치다 끝내 소멸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반추한다. 이런 순서를 밟자, 많은 점이 더 명확히 보인다. 군국주의 일본이 벌인 무도한 짓의 근본에 더 다가간 느낌이다. 선악 관념에 바탕을 둔 단순한 한일 대립 구도의 기존 도식에서 벗어나 상황을 입체로, 더 균형감 있게 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유신’의 자장 안에 한국의 10월 유신도 포함하는 이 책의 부제는 ‘야수의 연대기’다.

책 속 사례 하나를 눈여겨보게 됐다. 저자는 “쑨원은 신해혁명을 일으키며 ‘만주는 일본이 경영해도 된다’고 발언했다”(170쪽)고 소개했다. 책은 이 발언에 담긴 좀 복잡한 역사·문화 맥락을 설명하면서 공식적인 제안도 계약도 아닌 ‘그냥 한 말’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문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러나 일본의 권력층과 장교들은 쑨원의 발언을 선언으로, 선언을 일종의 계시로 받아들였다.” 이 같은 유신 멘털리티가 뒷날 만주사변 등의 씨앗 가운데 일부가 됐다고 저자는 본다.

일찌감치 한일 관계의 핵심을 꿰뚫은 작가 박경리(1926~2008) 선생의 산문집 ‘일본산고’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젊은 사람에게 더러 충고를 한다.…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189쪽) 곰배상은 상다리가 부러지게 푸짐하게 차린 상이다. 이 말은 일본의 권력자·지배층·우익을 겨눈 말로 이해해야 한다. 다수 일본 국민과는 크게 관련 없다.

윤석열 정부의 ‘통 큰’ 대일 외교가 좋은 성과로 이어지기 바란다. 일본 권력층에 곰배상을 차려 바친 격은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그래도 걱정은 된다. 일본 집권층 내부 현역 정치인 가운데 극우로 분류되는 이들이 꽤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조봉권 부국장 겸 문화라이프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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