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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민주적 법치국가를 위한 정부의 조건

김해원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자

  • 김해원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   입력 : 2023-03-19 19:45:24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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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6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전범기업이 책임져야 할 배상금을 우리가 대신 갚는 전범(戰犯) 친화적인 방안을 대승적 결단인 양 발표했다. 여기에는 “지지율 1%가 나오더라도 할 일은 하겠다”라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어떤 정부를 탄생시켰는지 자문하며 주권자로서 반성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권력 창출뿐만 아니라 창출된 권력의 존속과 행사과정에서도 구현돼야 할 이념이다. 특히 민주적 선거로 집권한 대통령이 국민 다수의 열망을 배신할 때 단결된 다수의 힘으로 퇴진을 요구하며 민주주의를 지켜낸 우리의 성취는, ‘다수의 열망으로 집권해서 다수의 열망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만이 참된 민주정부일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래서 묻는다. 피해자도, 국민 다수도 외면한 강제동원 해결방안은 민주정부의 방안인가?

물론 민주적으로 등장한 정부라고 하더라도, 다수의 열망을 맹종하는데 모든 권력자원을 소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다수의 열망을 거스르는 것이 이해될 수 있다. 다수의 지배로 집약되는 ‘민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법의 지배를 통해 민주주의의 결함을 보완하고 소수를 보호하려는 ‘법치’ 또한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퇴진을 거부한 대통령을 바로 끌어내어 처단치 않고, 법에 따른 탄핵절차를 인내하며 국가기관에게 법치의 모범을 보였다. 그래서 또 묻는다. 대법원 확정판결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도 모욕한 강제동원 해결방안은 법치정부의 방안인가?

우리나라는 다수가 결정하면 전쟁도 정당화할 수 있는 이념인 ‘민주주의’와 다수와 충돌하는 소수의 이익·가치가 존중될 수 있도록 예측가능한 법에 기대어 권력을 통제하려는 이념인 ‘법치주의’가 어우러져야 할 ‘민주적 법치국가’다. 이는 국민 다수의 열망에 부응할 개연성이 많은 자가 대통령직을 맡게끔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대통령이 낙점되도록 하면서도, 임기보장을 통해 변화무쌍한 다수의 열망으로부터 대통령이 덜 휘둘릴 기반을 제공하여 민주주의에 내포된 동적 불안정성과 다수 횡포를 통제하고 다수의 지지가 있어도 중임은 불가능케 하여 소수의 고통을 덜고 있는 헌법의 설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사실 다수의 열망으로 출범한 정부가 고정된 법을 준수하며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민주와 법치의 갈등과 조화를 전제한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 다수의 뜻도 거역하고 법의 정신도 유린한 정부의 친일적 방안은, 민주와 법치의 조화는커녕 양자 모두를 권력으로 짓밟은 증거 아닌가?

고대 헬라스에서도 현대 민주적 법치국가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권력행사는 민주와 법치 양자 모두를 능멸하는 것, 특히 다수의 열망에 부응할 수 없는 무능함을 난폭함으로 돌파하려는 교만으로부터 시작됐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최근 23주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27~37%를 오가며, 이는 노조를 겨냥한 대통령의 강성 발언이 기존 지지층에 강한 인상을 준 것에 힘입어 그나마 유지됐다는 평가가 많다. 이러한 지표를 현 정부가 다수의 열망에 잘 부응한 증거로 읽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같은 기간 54~65%를 오간 부정평가는 현 정부가 민주정부에서 일탈하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따라서 우리는 현 정부가 자신을 지지한 세력의 일부 의사를 다수 의사로 착각·위장해서 이를 대변하는 데 급급한 것 아닌지를 확인하면서 ‘민주주의적 경고’를 준비하고, 낮은 지지율이 인권을 경시하고 국가기관에 대한 준법요구인 법치를 국민에 대한 준법요구로 둔갑시켜 정적과 특정 집단을 향해 검·경찰의 자원을 폭력적으로 투입한 결과인지를 살피면서 ‘법치주의적 통제’를 일깨울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경고와 통제는 민주국가에서 지지율 1%인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하야할 결심’이지 ‘할 일은 하겠다’는 시건방이 아님을 깨닫게 하여, 현 정부가 교만의 늪에서 탈출해 무사히 종식되도록 돕기 위함이다.

윤석열 정부의 체면보다도 그러한 정부를 탄생시킨 우리의 명예가 더 중요하고, 정권의 명분보다도 헌법정신이 더 고귀하며, 4년 넘게 남은 임기보다도 우리 삶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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