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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탈아(脫亞)와 흥아(興亞) 사이에서 길을 묻다

민주적 동아시아 공동체, 韓 가장 유리한 국제환경

탈아·흥아 중 택일은 금물…제3의 길 지속적 찾아야

이홍규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중국연구센터 소장

  • 이홍규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중국연구센터 소장
  •  |   입력 : 2023-03-15 19:37:05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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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문명의 질서가 와해되고 서구 문명의 근대 질서가 구축되던 전환의 시점에서 서구 문명을 급속히 받아들인 아시아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일찍이 일본의 선각자 후쿠자와 유키치가 외쳤던 ‘탈아입구(脫亞入歐)’의 교리를 적극 실천하여 일본은 점차 서구열강의 반열로 올라갔다. 정작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자 일본의 야망은 더욱 커져 주변국을 식민지화하면서 아시아 부흥이라는 ‘흥아(興亞)’의 교리를 내세웠고 일본 제국 주도의 이른바 ‘대동아’를 구축하고자 했다.

2차대전에 참전한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대동아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미·소 냉전의 대립 구도에서 일본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경제부흥에 성공했고 다시 서구 중심주의 근대 질서의 일원이 되었다. ‘탈아입구’의 교리를 다시 받아들인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인접국인 한국도 일본의 발전모델을 참고해 경제성장에 성공했다. 일본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경제를 주도함으로써 ‘흥아’의 맹주가 되길 다시 꿈꾸었다.

미국까지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일본의 새로운 야망이 꺾인 것은 1980년대 중·후반 미국의 ‘사다리 걷어차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 경제의 굴기로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실업 등 경제 상황이 악화된 미국에서 반일감정이 거세게 일어나자 레이건 미 정부도 일본의 불공정 무역을 지적하며 강력한 통상압력을 가했다. 결국, 일본은 미국과의 플라자합의를 통해 환율을 조정하고 반도체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반도체 협정을 수용했다.

1978년 이래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시장경제 체제와 서구의 자본과 문화를 받아들였다. 중국판 ‘탈아입구’의 시작이었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중국경제의 세계 경제와의 통합을 의미했고 2004년 중국 헌법에는 사유재산 불가침 조항이 삽입되었다. 중국은 여전히 ‘중국특색’을 강조했지만 이러한 변화는 중국의 ‘세계화’를 의미했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세계화는 인접국인 한국에게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기회를 제공했다.

2010년 중국경제가 일본을 제치고 세계 경제 2위로 올라선 뒤,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의 목표를 공식 선언했다. 그 배경에는 1839년 아편전쟁 이후 서양 세력의 침략을 받아 한 세기가 넘게 굴욕을 당했다는 백년국치(百年國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과거 중화(中華)로 상징되던 중국 중심 아시아 문명의 영광을 재연하겠다는 국가적 야망이 존재한다. 중국 중심의 ‘흥아론’ 이다.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글로벌 파워로 떠오르자 미국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다시 매서워졌다. 미국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 등을 명분으로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등 무역전쟁을 전개하고 미·중 디커플링을 추진했다. 미국은 특히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 등을 끌어들여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 ‘칩4’ 결성을 시도하고 반도체 기술의 중국 수출을 막아섰다.

지난 13일 폐막된 중국 최대의 정치 행사 양회(兩會)에서 중국은 과학기술 부처를 1인자인 시진핑 주석의 직속 관리하에 놓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금지 등의 압박에 맞서고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추진하여 미국과의 기술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챙기겠다는 메시지다.

사실, 한국의 지속적인 발전을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과의 다차원적 관계와 떼놓고 볼 수는 없다. 한국의 경제성장 전반부가 한미/미일 동맹관계 하의 한일 협력관계 즉 한·미·일 삼각관계가 그 기반이 되었다면, 후반부는 동아시아 역내 협력 관계 즉 한·중·일 삼각관계가 그 기반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동아시아에서 특정 세력 팽창에 가장 민감한 나라는 한국일 것이다. 한국은 전근대 시기에는 중화제국에게 사대(事大)를 요구받았으며 근대로의 진입 과정에서는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로 전락했던 역사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나라도 한국일 것이다. 평화롭고 민주적인 동아시아가 한국에게 가장 유리한 국제환경이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연합 모델과 같이 민주적 동아시아 지역공동체 논의가 한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미·일 삼각관계의 강조가 보편적 근대문명이 된 서구 문명의 지속을 의미하는 ‘탈아’의 논리라면, 한·중·일 삼각관계의 강조는 새로운 아시아 문명의 창조 즉 ‘흥아’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은 ‘탈아’를 추구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흥아’를 추구해야 할 것인가. 올바른 길은 ‘탈아’와 ‘흥아’ 중 양자택일이 아닐 것이다. ‘탈아’와 ‘흥아’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답을 찾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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