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이 능사가 아니다. 셔틀외교가 목표가 될 수도 없다. 정상회담이나 셔틀외교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지난 6일 외교부가 참사 수준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 해법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난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한일정상회담이 잡혔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과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한껏 기대에 부푼 듯한 인상을 풍긴다. 한일 관계가 악화의 수렁에서 벗어나 경제·안보·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일대 약진을 보일 것처럼 의욕에 차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은 “미래를 위한 결단”이었다면서 그 분위기의 선봉에 서 있다.
한일 관계는 미래지향적으로 상승궤적을 그리면서 순항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입장이지만, 투트랙 대일외교에서 ‘과거 직시’라는 한 트랙이 무너진 상태의 출발인지라 험난한 미래가 예고되어 있다. 정부가 해법으로 제시한 제3자 변제방안은 문제투성이다. 무엇보다도 일국의 최고사법기관인 대법원의 판결을 무위로 만들어버린 점은 어느 누구도 수긍할 수 없는 폭거다. 2018년 우리 대법원은 일본 가해기업들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행위에 대해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판결이 신성시될 지경이 아니라 할지라도 지엄한 판단임에는 분명하다. 입만 열면 법을 말하고 법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최고법원의 판결을 무너뜨리며 “국격”을 말하고 “대승적 결단” 타령을 하고 있으니 국민이 수긍할 리 만무하다.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 해법 발표 이후 실시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 59%가 일본기업의 사죄와 배상 참여 없는 해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오직 35%만이 한일 관계를 위해 찬성한다는 결과였다. 한일 관계는 특수하여 국민 다수가 반대하면 나중에 반드시 뒤탈이 나게 되어 있다. 2015년 위안부 합의가 그랬다. 35%를 믿고 돌진하겠다는 정부 분위기인데, 국민을 이길 수는 없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분개해 일어난 촛불대항쟁에는 피해자와 국민 다수의 설득 없이 밀어붙인 위안부 합의가 한몫했다는 점을 되새길 만하다.
피해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는 것은 예고된 일이다. 피해자들은 일본 가해기업들의 사죄와 배상 참여가 최소한의 요구조건임을 오래전부터 분명히 해왔다. 박진 외교장관과 외교부 고위 간부들이 피해자들을 만나고 다녔는데 무엇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피해자들과 같이해온 대리인과 시민단체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해 야당들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이 연합, 반대 및 무효화 운동에 돌입해 그 기세가 만만찮다.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잊을 만하면 전임정부 탓을 한다. 그런데 이번 강제동원 해법 발표에서는 정부 해법이 전임정부의 외교적 노력 연장선상에 서 있다면서 전임정부 때는 상호신뢰 부족으로 못 이룬 것을 이번에 자신들이 해낸 듯 치장한다. 야비한 행태다. 문재인 대통령과 전임 정부가 한일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지 않았겠나. 과거사에 매달려 망치고 싶었겠는가. 그렇지 않다. 한일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가라는 안팎의 압박에 부응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일본 아베 총리와 내각에 훨씬 큰 책임이 있었다.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하면서 막무가내식 행동으로 일관했다. 일체 외교협상이 통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일본 정부와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적어도 세 가지 마지노선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첫째 대법원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둘째 피해자들의 요구를 최소한이라도 반영해야 한다. 셋째 성숙한 한일 관계는 일본 정부와 지도자들이 최소한일지라도 과거사 인식을 보여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제나 지금이나 누가 한일 관계를 소중하지 않게 여기겠나. 외교부가 6일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할 때 “문제해결의 끝이 아닌 진정한 시작”이라 했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격과 국력”이라고 했다. 대일외교는 어렵지만 국민적 지지를 얻어나가면서 해나가야 성과를 낼 수 있고, 그런 기반 위에 서야 한일 관계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 사상누각은 세파를 견디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