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서

언젠가부터 풍자 귀해져…신랄한 비판 설자리 줄어

탈춤의 해학 가진 한민족, 화이부동 사회 만들어야

김종희 문화공간 빈빈 대표

  • 김종희 문화공간 빈빈 대표
  •  |   입력 : 2023-03-01 19:47:16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어쩌다 보니 풍자 의미가 어색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희화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통찰하자는 풍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한국인의 의식구조입니다. 그 기저에는 정이 있습니다. 단지 조소나 조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정신을 품고 있는 풍자가 닿는 지점은 공동체의 성장입니다. 그 과정을 이끌어가는 힘이 웃음이라는 장치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웃음이 귀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니 건강한 비판과 수용이 아쉬운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다양성 사회를 표방한 지 오래되었으나 다양성이라는 말이 겉도는 세계로 가는 듯합니다.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는 미래 언어를 만들어가지 못합니다. 엄숙함을 넘어 유연한 사고를 이끌어내는 웃음의 가치를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다시 찾아봅니다.

중세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끔찍한 독살에 의해 죽어 나간 수도사들에겐 공통점이 있는데 한결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이 관련되었습니다. 누군가가 그 책을 읽는 것을 막기 위해 책의 오른쪽 아래에 독을 묻혔기 때문입니다. 한 장 한 장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책에 빠져들 즈음 독에 중독된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의문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수도사 윌리엄이 파견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 책을 깊숙이 감추었고 누구든 탐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독을 바른 사람은 다름 아닌 수도원의 실세 호르게였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파헤친 윌리엄과 호르게의 웃음 논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큽니다. 웃음이란 무엇인가. 웃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두 사람의 논쟁 부분을 일부 옮겨 봅니다. (윌리엄-윌/ 호르게 -호)

(윌)도대체 숱한 책 가운데 유독 이 책만 더욱 기를 쓰고 감추려 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세속적 희극에 관한 책이 많이 있고, 외설된 웃음을 찬양하는 다른 책도 얼마든지 있는데 당신은 왜 하필 이 책만 그토록 두려워하는 겁니까?

(호)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책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철학자의 저서란 그리스도교가 여러 세기에 걸쳐 축적해 온 가르침의 일부를 파괴했습니다.…철학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이 세상의 모습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윌)그렇지만 웃음에 대한 논의는 왜 두려워합니까? 책을 없앤다고 해서 웃음 자체를 당신이 없앨 수는 없는 겁니다.

(호)그게 불가능한 일인 건 압니다만 웃음이란 우리 육체의 나약 타락 어리석음입니다.

웃음을 죽음이라 생각했던 엄숙주의 호르게와 달리 윌리엄이 주장한 희극적 유쾌함은 사회에 대한 관심과 환기입니다. 부조리한 상황과 사람에 대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동시에 그것을 통해 나를 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웃음은 건강한 긴장을 주기도 합니다.

풍자는 신랄한 조소나 비난을 포함할 때도 있지만 그 기저에는 현실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생기 잃은 사회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직설적이되 엄숙한 비판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동반한 웃음 뒤에는 변화에 대한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풍자는 부족함을 비웃기보다 따뜻한 인간애로써 포섭해가고자 하는 화해의 구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탈춤을 통해 우리는 일찍이 웃음의 의미를 보았습니다. 엄격한 신분제에 대한 비판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 탈춤에서 관객은 구경꾼이면서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는 것처럼.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인간의 권리를 유쾌한 언어로 통쾌하게 풀어내는 탈춤은 역동적인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주지 않던가요.

문득 1980년대를 가장 강렬한 메시지로 표현했던 오윤의 목판화를 생각합니다. 오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도깨비는 기득권의 권위를 이용해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비인권적 현장에서 비열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날립니다. 동시에 힘없는 민중의 편에 서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작품 속에 표출하고 싶었던 민(民)은 어린아이처럼 약하고 여린 풀처럼 부드럽지만 강인한 의지와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맺힌 사회에서 풀린 사회로 가기를 희망했던 오윤의 도깨비와 호랑이는 신명의 춤사위로 사회구조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합니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와 같습니다. 그러나 갈등이 생산적일 때 사회는 성장합니다. 내 편 아니면 적이 되는 당동벌이(黨同伐異) 말고 다르지만 화합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만들어가는 오늘을 만나고 싶습니다. 한바탕 신명으로 웃어보는 오늘을 만나고 싶습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속보]미 애리조나서 60년 만의 민주당 주지사 당선, 상하원까지 다 장악
  2. 21249회 로또복권 1등 14명…당첨금 20억2505만 원
  3. 3겨울시작 '입동'인 7일, 부울경 맑고 쌀쌀… 외출땐 따뜻한 옷 필수
  4. 4[속보]대구서 자신 도우려던 구급대원 얼굴 때린 60대 벌금 700만 원 선고
  5. 5[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6. 6올가을 첫 얼음 관측… 오전 7시 설악산 영하 9도, 횡성 영하 6.8도
  7. 7[속보] 도로 온수관 파열로 생긴 구멍에 행인 빠져…전신 60% 화상
  8. 8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1원… 전주보다 0.2원 ↓
  9. 9미래에셋증권도 해킹 사고… 고객 3800여명 임직원 3만5255명 개인정보 흘러나가
  10. 10[속보] 만천하스카이워크 집라인 운행 중 멈춰…승객 30분간 공중에 매달려 있다 구조
  1. 1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2. 2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인호 HUG 사장 지명
  3. 3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4. 4홍익표 정무수석 사의 표명…후임에 최인호 HUG 사장 거론
  5. 5김민석, 신천지 논란에 “죄송…조사결과 공개해도 문제”
  6. 6회생인가 촉구 시민 목소리 1차분 6일 법원 제출
  7. 7이 대통령, 법무장관 후보자에 이용철 지명…국세청장엔 안덕수
  8. 8[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소폭 반등한 41%…민주36%·국힘 28%
  9. 9김민석, 신천지 논란 재차 사과…“상처 입은 모든 분께 죄송”
  10. 10'조작기소 특검법' 오늘 與 주도 국회 본회의 처리 전망
  1. 11249회 로또복권 1등 14명…당첨금 20억2505만 원
  2. 2[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3. 3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1원… 전주보다 0.2원 ↓
  4. 4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5. 5‘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6. 6비에 화약 젖을라 손길 분주…400m 대형 불꽃 ‘카운트다운’
  7. 7부산 외국인 관광객 400만시대 성큼... 카드소비 1조 돌파
  8. 8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9. 9비수도권 미분양 적체…LH 매입 신청 86% 탈락
  10. 10팔란티어 AI와 함께 만든다…부산 신발업체 창신 ‘혁신 점프’
  1. 1겨울시작 '입동'인 7일, 부울경 맑고 쌀쌀… 외출땐 따뜻한 옷 필수
  2. 2[속보]대구서 자신 도우려던 구급대원 얼굴 때린 60대 벌금 700만 원 선고
  3. 3올가을 첫 얼음 관측… 오전 7시 설악산 영하 9도, 횡성 영하 6.8도
  4. 4[속보] 도로 온수관 파열로 생긴 구멍에 행인 빠져…전신 60% 화상
  5. 5미래에셋증권도 해킹 사고… 고객 3800여명 임직원 3만5255명 개인정보 흘러나가
  6. 6[속보] 만천하스카이워크 집라인 운행 중 멈춰…승객 30분간 공중에 매달려 있다 구조
  7. 7반여1·4동 어르신과 함께한‘사랑의 자장면 나눔’
  8. 8'세브란스병원 흉기난동' 50대 여성 구속심사
  9. 9해운대구 재송2동 릴레이안부봉사단, 2026년 릴레이 다함께 가을소풍’ 추진
  10. 10‘은평 스토킹 살인’ 60대 남성 구속심사…혐의 대체로 인정
  1. 1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2. 2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3. 3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4. 4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5. 5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6. 6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7. 7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8. 8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9. 9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10. 10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기고 [전체보기]
부산 관광 다음 키워드는 ‘건축관광’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공공재
선출 권력 통제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능인선원, 체불임금마저 대여금으로 처리하려 하다니
미 민주당 상·하원 장악…통상·안보 전략 재점검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낯설고도 궁금했던 부산과의 첫 만남
일상으로의 초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오래된 건축이 만드는 새로운 연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