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 사람들이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가기 위해 많은 것들을 다짐합니다. 어느덧 2023년도 2개월이 지나 계절이 바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매년 새해가 되면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읽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시를 말하라면 ‘쉽게 쓰여진 시’를 단연 1등으로 꼽습니다. “인생을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고 말한 그의 글에서 불평등이라는 총성 없는 전쟁터를 살아가는 지금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감정은 부끄러움이라 여기며 한 해도 부끄러움을 알며 살아갈 수 있길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성경구절을 읽으며 새로운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2023년 한 해는 애통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말입니다.

세상을 뒤덮은 정치 이슈 속에 사실은 삶의 고통들이 많이 잊혀져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2019년도 경동건설 산재 사망 고 정순규 님을 비롯해 매년 반복되는 산업재해들, 지난 3년간 감염병 대응 최전선에서 힘썼지만 월급걱정을 해야 하는 부산의료원의 노동자들, 최근 튀르키예·시리아 지진과 같은 국제적인 사건들까지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사실 사회 곳곳에는 많은 아픔들이 존재하기에 글을 쓰는 순간도 조심스럽지만 제가 올해 첫 공영장례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순간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1월 21일 설날 연휴 첫날 영락공원에 20여 명이 모였습니다. 영정사진도 없이, 고인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고인이 된 김씨 아저씨의 장례식을 함께 치렀습니다. 공영장례 조례가 제정되었지만 부산진구에서는 동의의료원에 문의하라는 말만 남길 뿐이었습니다. 다행히 영락공원 측의 도움으로 화장터에 들어가기 전 공영장례 전용빈소에서 장례의식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돌아가신 분과의 인연은 저 역시도 작년 10월부터 시작되었던 짧은 것이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약 10개월간 입원해있던 아저씨는 입원해 있는 동안 요양병원으로 전입신고가 되어있고 신분증 발급과 수급통장이 신규로 개설되어 있었습니다. 주민센터에 전입신고 자료 일체를 사본으로 받아 확인해본 결과 본인은 정체를 모른다고 하는 막도장과 타인의 글씨로 신고된 서류들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통장으로 들어오는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는 매달 CD기에서 인출되었고 퇴원할 때가 돼서야 통장을 돌려받았다고 했습니다. 김씨 아저씨는 본인의 생계가 어려워 병원에서 정체 모르게 사용한 생계급여를 돌려받고 싶다며 수소문 끝에 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과거 쪽방상담소를 이용했지만 임대주택에 입주했다는 사유로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해 시민단체로 찾아오신 거였습니다.

공익활동을 함께하는 변호사와 여러 차례 만나고 연락하며 고소장을 준비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황망하게도 돌아가시게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둔 것이 없어 영정사진조차 마련하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렸지만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연대해준 주민들이 계셔서 가시는 길은 고독하지 않게 보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복지운동을 하다 보면 복지부정 사례와 인권침해 사건들을 종종 만나기도 하는데 한 사람의 사례에서 시작해 구조의 문제나 제도의 문제를 밝혀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돌아가신 김씨 아저씨를 보며 요양병원에서 의료기관에 전입신고를 하고, 장기간 입원해 있으며, 기초생활수급비 통장이 환자 동의 없이 관리되고, 본인부담금 면제와 같은 유인책이 발견된다면 사회적 약자를 입원시켜 건강보험기금과 의료급여기금을 받아 수익을 창출하는 나쁜 의료기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김씨 아저씨도 마찬가지였지만 경험상 이런 경우 피해자는 늘 무연고자였습니다.

인권은 더디게 인식되는데 시장의 수익성은 빛보다 빠릅니다. 또 어딘가에서 본인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을 시민이 있을까 염려하며 올해도 활동으로 살아갑니다.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의 끝자락입니다. 이미 애통해야 할 일들이 많은 작금의 사회에서 애통할 일이 더 늘어나지 않길 늦게나마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