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골마을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한창이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유신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간접선거로 뽑기 위해 만든 기구로, 대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권한이 막강하다. 난립한 후보 13명은 서로 친인척 아니면 사돈 동네형님 사이다. 주변 회유와 협박 탓에 하나 둘 사퇴하고 최종 세 명이 남았다. 편가르기, 유언비어 살포, 후보 매수에 이르기까지 안면몰수의 추태 끝에 당선은 가장 비열한 인간 몫으로 돌아간다. 이문열 작가가 타락한 선거를 분뇨와 오랑캐에 비유한 초기 단편 ‘분호난장기’ 내용이다. 저질 선거판을 신랄하게 풍자한 이 소설은 전두환 정권 시절 판매금지를 당했다.
순수 국내산 치즈 생산지로 유명한 전북 임실군은 8번의 기초단체장 선거가 배출한 군수 5명 전원이 각종 범죄로 처벌받은 오명을 쓰고 있다. 전임자 4명은 뇌물 등으로 사퇴하거나 직을 잃었고, 내리 3선에 성공한 현직 군수도 직위 상실형을 면했을 뿐 처벌 전력이 있다. 부산과 이웃한 경남 양산시는 민선 시장 5명 가운데 한 명이 수뢰 혐의로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두 명은 구속됐다. 공단이 많은 김해시 역시 5명의 시장 중 3명이 뇌물수수 등 혐의로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충절의 고장 경남 의령군이 요즘 군수 잔혹사로 새삼 입길에 올랐다. 민선 군수 7명 중에서 무려 4명이 사기, 배임, 선거법 위반 등으로 사퇴한 이곳에서 현직인 오태완 군수마저 재판을 받고 있어서다. 오 군수는 2년 전 재보궐선거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를 하다 여성기자에게 부적절한 발언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1심은 이를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최종심에서 죄가 확정되면 의령군민은 2021년부터 3년 연속으로 해마다 군수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다. 임진왜란 때 전국 최초로 의병 봉기한 그 자랑스런 역사를 부끄럽게 한다.
군수는 억대 연봉에 수천만 원의 업무추진비, 각종 인허가권을 쥐고 있다.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도 많다. 그런 자리에 국회의원들은 자질이나 능력 보다 자신의 수족 노릇하기 쉬운 사람을 공천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인구 감소로 유권자 모수는 적어져 몇십, 몇백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니 이권으로 뭉친 이들은 더 위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정치판 생리가 고스란히 복제되고 그 안에서 ‘어물전 망신시키는 꼴뚜기’ 단체장들이 자꾸 탄생한다. 하긴 서울시장 부산시장 충남도지사도 추문에 휩싸여 중도 낙마하는 세상인데 더 말해 무엇하랴.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