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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푸른 시간 앞에서

밝음과 어둠 모호한 경계…낯설음 엄습 오감이 긴장

유럽 명화들 창작의 원천…매일 오는 순간 활용해야

배미애 갤러리이배 대표

  • 배미애 갤러리이배 대표
  •  |   입력 : 2023-02-15 19:28:50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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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갑지는 않지만 긴장과 불안은 늘 우리 삶 속에 자라 잡고 있으며 설령 사라진다고 해도 일상의 삶이 그렇게 명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생의 경험은 대부분 긴장의 연속에서 이루어지며, 삶이란 어떤 의미에서 자기방어적 기제가 수반되는 이러한 긴장된 상황에서 오감이 작동되어 나타나는 인간 존재 내면의 미묘한 변화의 시간적·공간적 집합체일 것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예고 없이 부지기수로 찾아오는 긴장감으로 인해 갑자기 익숙한 주변이 낯설게 느껴지고 앞으로 전개될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스스로 살아있다거나 깨어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에서 이와 같은 뜬금없는 낯설음은 가끔 자신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뒷걸음질 치게도 만든다.

프랑스어에서 나온 ‘푸른 시간(l’heure bleue)’은 해가 설핏 기울기 시작하고 땅거미가 내릴 때 저만큼 보이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 미묘한 시간이라 하여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고도 한다. 약 20분가량의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이 시간대는 어렴풋하게나마 사물의 형체가 구별되는 밝음에서 어둠으로 옮아가는 ‘불분명한 시간’이다. 빛과 어둠의 모호한 경계로 인하여 마치 현실과 꿈의 시공간적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이 시간에는 때로 늘 익숙하던 세계를 갑자기 낯설게 만들어 긴장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푸른 시간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분분하지만 우리는 물리적으로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이 푸른 시간에 존재해야 하며 누구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지만 모든 사람이 이 푸른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시간으로 누리지는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모든 사람들이 푸른 시간에 존재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이 시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블루의 시간(Hour Blue)이라 불리는 푸른 시간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벨기에 출신 작가 얀 파브르(1958~)는 완전한 고요, 그리고 완전한 포화상태의 순간을 새로움을 시작하는 ‘완벽한 시간’으로 인식하고 ‘블루의 시간’이라 했다. 그의 서정적 시간 개념은 형태를 변화하고 때로는 소생하는 짙푸르게 채색한 동물 사람 오브제 등의 작품으로 표현되었다. 그는 “블루의 시간은 내가 포착하려고 찾아다녔던 바로 그 시간이다. 이는 이름 없는 것들이 소생하는 때에 존재하는 밤과 낮 사이의 공간이며 생과 사의 기로이다”고 예찬했다. 노르웨이 출신 덴마크 자연주의 천재 화가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1851~1909)도 여름날 저녁 푸른빛이 감도는 시간대에 매료되었고 이를 ‘blue hour(푸른 시간)’라고 불렀다. 푸른 색조로 물들인 ‘스카겐의 여름 저녁(1893)’에는 여름 꽃향기가 매우 강렬하다는 이 시간대가 주는 황홀한 풍경과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서는 앞을 가늠하기 힘든 불확실한 상황이 전개된다. 마치 선과 악이 동시에 공존하는 불분명한 상황에서 인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처럼 푸른 시간에 엄습하는 불안한 긴장감은 우리 삶 속에 늘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얀 파브르의 생각처럼 이 시간을 차라리 ‘소생’의 기회로 삼으면 환히 빛나는 어둠을 누리게 될 것이고, 기회를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두운 대낮이 될 것이다. 나도 얀 파브르와 마찬가지로 오후 다섯 시부터 여섯 시 사이의 이 푸른 시간에 더욱 정성을 들이고 스스로에게 오롯이 집중하여 우리 인생에서 귀중한 기억들을 되살려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딛게 하는 감사의 시간으로 이해하려 한다. 낯설음과 긴장감으로 망설여지는 나를 과감히 재생하여 새로이 받아들인 에너지로 어김없이 또 다가올 푸른 시간을 기꺼이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이유를 알 듯 모를 듯 서글픔이 몰려드는 시각, 감성이 이성을 앞서나가 방향을 잃고 갈피를 못 잡는 이 순간, 우리 모두는 대자연이 고요해지는 바로 그 혼돈의 ‘푸른 시간’ 앞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에 긴장해야 한다. 동공을 크게 열어 서서히 다가오는 어둠을 찬란한 빛으로 받아들이고 오늘 살아 있었던 나의 하루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할 시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명확한 분별력으로 앞으로 주어질 상황이 나를 감싸 안을 사랑스러운 개일지, 아니면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음흉한 늑대일지를 구분해야 한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복잡한 인간관계와 일의 연속이 우리 삶이라면 하루에도 수없이 찾아오는 푸른 시간들에 차라리 감사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새롭게 나아가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그러나 푸른 시간을 이해하는 나의 생각이 어떻든지 간에 이 시간에 바라본 하늘의 ‘블루’는 슬프도록 아름답다. 마치 우리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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