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기업’ 파트를 담당한 2006년 일이다. 취재하다 만난 부산의 한 정보기술(IT)업체 직원 A(20대) 씨는 무척 힘겨워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온종일 일하고도 손에 쥐는 월급은 2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A 씨는 “친구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밤새우는 일이 부지기수지만 손에 쥐는 돈은 170만 원이 전부다. 이렇게 살기에는 내 청춘이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서울행을 택했다.
당시 부산 IT업체가 주력으로 삼은 분야는 전산 관리, 웹 기반 홈페이지 구축, PC 게임 등이다. 2012년 카카오톡과 연동해 출시된 ‘애니팡’이 350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며 ‘국민 게임’으로 등극하기 약 5년 전이다. 또 지금은 없어져야 할 산물인 ‘열정페이’가 당연했던 시절이어서 A 씨뿐만 아니라 대부분 직장인이 겪는 문제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억울하면 좋은 회사 가지…”라는 분위기였다.
17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부산은 여전히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인재를 어떻게 하면 붙들어 둘 수 있을지 걱정하는 처지다. 지역 대학의 경쟁력은 해마다 추락하고, 르노코리아자동차 등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그럴듯한 대기업이 없는 상황도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부산 연제구 한 클라우드 전문 업체를 방문하면서 달라진 부산의 IT 환경을 엿볼 수 있었다. 업체 직원들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신입사원 평균 연봉이 3000만 원 중·후반대라고 했다. 복리후생을 포함하면 4000만 원 안팎이 될 터다.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금융권에는 못 미치지만, 평균적인 연봉을 받는 직장과 비교하면 꽤 괜찮은 수준이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지난해 6월 발표한 ‘부산지역 MZ세대 구직자와 기업의 일자리 인식 조사’ 결과 구직난이 발생하는 구간이 연봉 3000만 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이보다 1000만 원가량 더 받는 셈이다. 당시 조사에서 MZ세대 10명 중 8명(77.5%)은 부산에서의 취업을 희망했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본사와 부산지사 간 임금·복리후생이 동등하게 책정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도권은 물가가 비싼 만큼 어느 정도 수준에서 반영되는 것은 묵인할 수 있는 정도지만 그마저도 차별하지 않았다.
최근 5년간 굵직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5곳이 부산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소프트웨어 기업통합시스템(ERP) 전문 기업인 ‘더존비즈온’이 2017년 스타트를 끊었다. 이어 클라우드 업체 ‘베스핀글로벌’ ‘메가존클라우드’ ‘클루커스’, 정보보안 업체 ‘윈스’까지 부산으로 와 인재 양성에 나서고 있다. 동남권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한편 부산 울산 경남 30여 개 대학에서 배출되는 인재를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전문 인력을 키워놓으면 대기업들이 ‘웃돈’을 얹어주고 데려가는 ‘웃픈’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이들 업체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부산시와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은 이와 연계해 2021년 ‘부산디지털혁신아카데미(BDIA)’를 가동했다. ICT 분야 고급 인력을 양성하고 인재 역외 유출을 방지하고자 훈련 기관들과 연계해 추진하는 채용 연계형 교육 지원 사업이다. 지난해에는 해운대 센텀벤처타운 5, 6층에 전용 교육장을 개소하기도 했다. 개소식에서 박형준 시장은 “2026년까지 5년간 총사업비 1500억 원을 투입해 연간 2000명 내외로 모두 1만 명의 고급 ICT 인력을 양성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와 궤를 같이해 지역 투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시 김귀옥 투자유치과장은 “최근 부산으로 이전하고 싶어 하는 기업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올해 목표인 4조 원 투자 유치를 무난히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부산이 동남권 경제 거점으로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인다. 이에 맞춰 시는 부산을 젊은 인재가 떠나는 도시가 아닌 찾아오는 도시로 만들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판교를 잇는 ‘부교(부산형 판교)’를 조성하고 나아가 판교와 맞짱 뜨는 부산으로 키워야 한다. 그때가 되면 굳이 슬로건으로 강조하지 않아도 시민 입에서 자연스럽게 ‘부산이라 좋다(Busan is good)’가 나오지 않을까.
유정환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