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라디오

조미형 소설가

  • 조미형 소설가
  •  |   입력 : 2023-01-29 19:25:21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라디오는 소리로 피어나는 꽃과도 같습니다. 라벤더리시안 꽃을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로 DJ가 함께하기를 청하네요. 출근길에 마주친 사람들의 옷이 가벼워졌다며, 봄이 오고 있다고 전합니다.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매화꽃이 피었을까요? 묻네요. 조수미가 부르는 ‘Songs My Mother Taught Me’를 들려줍니다.

청취자들이 매화꽃 소식을 라디오 앱을 통해 실시간 알려옵니다. 거제도에는 가지마다 꽃망울이 맺혔는데 은은한 향을 맡을 수 있다고 합니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매화꽃 향기를 음미합니다.

문득 예전에 살던 집 앞 공원 구석에서 자라던 매화나무 한 그루가 생각났어요. 볼품없이 앙상하게 마른 나무였습니다. 어느 날, 추운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망울이 올라오더니 꽃이 피었습니다. 이른 새벽 창문을 열면 은은한 향이 났어요. 약간 톡 쏘는 알싸하면서 달콤한 향기였지요. 가늘고 여린 나무는 꽃을 피우느라 힘들었는지 꽃이 지고 또 죽은 듯 웅크려 있다가 잎을 틔웠습니다.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이 구석진 매화나무 아래 웅크려 앉아 급한 볼일을 보기도 했어요. 유치원 아이부터 교복을 입은 아이와 옷을 잘 차려입은 어르신도 매화나무를 찾았습니다. 묘하게도 들고양이들도 매화나무 아래 흙을 파고 볼일을 봤습니다.

봄비가 내리고 물방울처럼 생긴 초록 열매가 볼록해졌습니다. 매실을 발견한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손끝으로 열매를 톡 건드리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매실이 커질수록 나무 주변을 좀 더 오래 머물다 아쉬운 표정으로 떠나기를 반복했습니다. 하루는 해가 질 무렵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자가 매화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자신이 봄부터 봐놓았던 매실이 사라졌다며, 누가 따갔느냐고 험한 말을 쏟아내더니 갑자기 매실나무 가지를 뚝 분질렀어요. 그 후 몇몇 사람이 비슷한 행동을 했습니다. 잎을 뜯고, 가지를 분지르고 나무를 발로 찼습니다. 무더위가 시작되는 6월 중순 유치원 원복을 입은 아이가 나무 아래에서 엄마를 불렀습니다. 노란 열매가 있다며 먹어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만 볼 수 있는 가지에 노랗게 익은 매실 한 개가 잎사귀 뒤에 있었어요.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귀에 무슨 말인가 속삭이고 손을 잡고 떠났습니다. 문득 그때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영화 음악 두 곡을 이어서 들려주네요. 꽃잎을 스치는 바람처럼 가벼운 목소리로 DJ가 봄꽃 소식을 전합니다. 제주도에 유채꽃이 피었다고 하네요. 바람이 불면 노란 물결이 일렁거려 눈이 부신다고 합니다. 일상을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꽃은 싱그럽고, 유난히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사연을 듣는 동안 머릿속에는 강렬한 원색으로 눈을 사로잡은 앙리 마티스의 ‘붉은 물고기와 고양이’가 떠오르네요.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물고기 세 마리가 담긴 어항 속에 앞발을 넣고 있는 그림입니다. 소리로 피어나는 라디오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만큼이나 다채로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습니다.

DJ는 청취자에게 자신만의 봄을 기다리는 설렘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네요. 나만의 봄 설렘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꽃이 핀 들녘으로 산책을 가볼까 싶다가 불쑥 봄나물을 사러 시장에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해 질 무렵 라디오는 따뜻한 위로를 전합니다. DJ가 전하는 낮고 고요하지만 푸근한 음성으로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습니다’는 말에 코끝이 찡하네요. 저녁이 전하는 음악을 듣는 순간 울컥합니다. 고기잡이하는 어부처럼 짠 내 나는 하루를 보내지 않았는데, 발바닥이 따가울 정도로 뛰어다니는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울컥할까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장국영의 노래 ‘We’re All Alone’이 거실을 가득 메웁니다.

라디오는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려주기도 하고, 간질거리는 설렘을 전달하다가 이제는 그리움이 되어버린 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일은 라디오가 또 어떤 색깔의 꽃으로 피어날지 자못 기대됩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2살 어려져 다시 20대” 기대감…“친구가 형·언니로” 혼선 우려도
  2. 2배 못 띄워 300명 제주여행 망친 해운사, 보상 1년째 회피
  3. 3부산 대학 전임교원 강의 비율…동의대 82%, 교대 52%
  4. 4부산 전셋값 급락…하반기 역전세 쏟아진다
  5. 5[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16> 오리 음식과 낙동강
  6. 6서부산 공급과잉 지식산업센터 대규모 공실 우려
  7. 7부산의료원 코로나 사투 3년 후유증…일반환자 뚝 끊겼다
  8. 8부산 청년 39세로 확대 땐 정책 수혜 20만명 는다
  9. 9[정가 백브리핑] 윤심 잡은 ‘김장 연대’가 그의 작품…국힘 ‘찐실세’ 떠오른 박성민
  10. 10[세상읽기] 생태도시 부산, 세계도시로의 도약
  1. 1부산 청년 39세로 확대 땐 정책 수혜 20만명 는다
  2. 2[정가 백브리핑] 윤심 잡은 ‘김장 연대’가 그의 작품…국힘 ‘찐실세’ 떠오른 박성민
  3. 3호국 형제 73년 만에 유해 상봉…尹 “한미 핵기반 동맹 격상”(종합)
  4. 4"5년 간 991개 업체, 95억 원 노동부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5. 5“천안함 자폭” 논란 이래경, 민주 혁신위원장 9시간 만에 사의(종합)
  6. 6‘택시 등 대중교통비 인상 전 의견수렴 의무화’ 조례 시끌
  7. 7한국 유엔 안보리 11년만에 재진입할까
  8. 8뮤지컬 보고 치킨 주문까지...교육재정교부금도 줄줄 샜다
  9. 9'호국 형제' 73년 만에 만나 함께 묻혔다
  10. 10원점 돌아간 ‘민주 혁신기구’…되레 혹 붙인 이재명 리더십
  1. 1부산 전셋값 급락…하반기 역전세 쏟아진다
  2. 2서부산 공급과잉 지식산업센터 대규모 공실 우려
  3. 3부산신발 기술 에티오피아 전수…엑스포 우군도 만든다
  4. 4“부산·인천노선 병행…부정기 항공편 적극 발굴”
  5. 5설립허가 난 27곳 중 14곳이 ‘사하’, 지자체 승인 남발 과잉공급 부채질
  6. 6노 “인상” 사 “동결”…與는 지역 차등 최저임금제 발의
  7. 7‘회식에서 혼술로’...편의점 숙성회 나왔다
  8. 8‘5000만 원 목돈’ 청년도약계좌 6% 금리 나올까
  9. 9균형발전 특별법 내달 9일 시행…'지방시대위'에 전문가 300명
  10. 10부산 대저 공공주택지구 조성에 속도 더 붙는다
  1. 1“2살 어려져 다시 20대” 기대감…“친구가 형·언니로” 혼선 우려도
  2. 2배 못 띄워 300명 제주여행 망친 해운사, 보상 1년째 회피
  3. 3부산 대학 전임교원 강의 비율…동의대 82%, 교대 52%
  4. 4부산의료원 코로나 사투 3년 후유증…일반환자 뚝 끊겼다
  5. 5부산노동안전보건센터 추진 3년…市, 구체적 건립 계획도 못 세워
  6. 6습기 폭탄, 찬물 샤워…오전 6시면 출근전쟁 소리에 잠 깨
  7. 7카메라에 담은 위트컴 장군의 부산 사랑
  8. 8주말 황령산 고갯길 넘는 차량들로 몸살…좁은 도로 주민 위협
  9. 9오늘의 날씨- 2023년 6월 7일
  10. 10“성폭행 당하고도 가해자 낙인” 59년의 恨 대법은 풀어줄까
  1. 1안권수 롯데 가을야구 위해 시즌중 수술
  2. 2메시 어디로? 바르샤냐 사우디냐
  3. 3‘레전드 수비수’ 기리며…16개팀 짜장면 먹으며 열전
  4. 4클린스만호 수비라인 세대교체 성공할까
  5. 5유해란 LPGA 신인왕 굳히기 들어간다
  6. 6추신수, 부산고에 소고기 50㎏ 쐈다…황금사자기 첫 우승에 동문도 ‘들썩’
  7. 7U-20 3연속 4강…브라질·잉글랜드 차례로 격파
  8. 8U-20 월드컵 축구 한국 2회 연속 4강 진출 쾌거
  9. 9롯데, kt 고영표 공략 실패…1-4 패배
  10. 10세트피스로 ‘원샷원킬’…최석현 95분 침묵 깬 헤딩골
우리은행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우리는 제1부두를 맘대로 할 자격이 없다
황령산 봉수전망대에 보내는 간곡한 바람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바뀐 것이 원인이다
낙동강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기고 [전체보기]
당신이 부산에서 다치면 안 되는 이유
제28회 바다의 날을 보내며
기자수첩 [전체보기]
BIFF 사태, 단순 내부갈등으로 치부될 일인가
업자에 돈 빌려준 경찰들…전세사기 피해자 두 번 울었다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한일회담, 그들의 영구집권은 가능할까?
한국은 여기까지다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 중
3차 세계화, 우리는 괜찮을까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학생의 날’이 있다면
“거울아, 거울아!” 그 중독의 마법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피리와 히치리키
엑스포와 나비효과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산은, 새 성장축 발전에 동참하길
‘소통 부재’를 해결하는 법
도청도설 [전체보기]
BTS와 김시스터즈
국가대표의 품격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김해 뒷고기
명태 산업
사설 [전체보기]
해파리부터 사고 예방까지…해수욕장 안전 최선을
혁신위원장 낙마, 그만큼 멀어보이는 민주당 쇄신
세상읽기 [전체보기]
6·25전쟁, 의사, 그리고 부산
증거에 기반한 최저임금 인상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간호법 제정안과 지역사회 보건의료
복지 지출의 원칙과 난방비 지원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새로운 해양시대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가족에게 감사의 꽃을 드립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나에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한국경제 괜찮은가
한반도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그림의 맛, 돈의 맛
중세의 혐오와 공감의 정치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밥의 길, 쌀의 미래
원전에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세계의 대전환, 2030 부울경세계박람회
근고지영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을 되살리려면
대통령의 초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내게서 멀어지는 것들
새옹지마
특별기고 [전체보기]
한일관계, 기초 제대로 잡아가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어린이를 위한 음악
두 마리 토끼, 콘골트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남농산수화’의 탄생
의재 허백련의 한국적인 산수화
CEO 칼럼 [전체보기]
기후위기 해결에 앞장서는 부산을 꿈꾸며
지역서도 유니콘 기업 나와야 한다
  • 부산항쟁 문학상 공모
  • 부산엑스포키즈 쇼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