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애들은 벌써 고등학교 수학을 다 끝내고 그걸 한 번 더 공부하고 있다던데, 너희는…….”, 서울 애들은 어디까지 공부했다더라, 서울 애들은 어떻게 하고 있다더라. 평택시의 읍(더 어릴 때는 면이었다), 리 단위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가끔씩 들었던 말이다. 학원 선생님, 부모님, 그리고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까지도 그런 말을 했다. 서울 사람들처럼 살지 않으면, 혹은 서울에 있지 않으면 잘못 살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도시 안에서도 시내와 상대적으로 시골인 우리 동네와의 비교가 있었다. 한 학교 안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았다. 부모님, 이웃 어른, 선생님, 친구들 등 수많은 주변인들의 칭찬과 지지를 더 받았다.
문제는 그런 환경에서 자란 학생이 훗날 서울에 가지도 못하고 성적이나 업무에서 뒤처질 때 발생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는 성적에서 나온다는 사고방식이 주입된 것이다.
본인이 도달하지 못한 곳(서울, 더 높은 성적)과 자신이 있는 곳을 비교하며 패배감을 느낀다. 다른 곳을 바라보며 지금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한다.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으로 비교의식과 패배감이 주입된 것이다.
한 예로 내가 그랬다. 대학에 와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성적이 좋아야만 내가 잘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왔는데 그렇질 못해 당혹감이 들었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그것도 모르냐, 그것밖에 못 하냐는 식으로 나를 대하던 학우나 교수님이 계셨다. 그럼 내가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대우가 피드백으로 작용할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패배감과 주눅만 더 들게 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때 틀에서 나오게 된 것 같다. 이전까지는 성취도가 낮은 사람을 보면 정말로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자신이 대학 입학 후 여러 시련을 겪으면서 사람마다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갖게 되었다.
나의 경우 주변인들이 범죄를 당하거나 정신적 문제가 생기거나 혹은 악화되었고, 큰돈을 잃거나 믿음을 배신당했다. 가까운 사람들의 일들에 너무나 신경이 쓰였고 학업에도 영향이 컸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하면서 다른 이들을 평면적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기도 했다. 공부나 일을 상대적으로 못 하는 사람을 볼 때 해내도록 다그쳐야 할, 혹은 배제해야 할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사정이 있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사람으로 보게 되었다.
또한 명예로운 후퇴가 필요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이 답답할 때, 한심하게 느껴질 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마저 자기를 못났다고 공격할 때 명예로운 후퇴가 필요하다. 너 정말 못하고 있어, 라고 말하지 않고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많은 것을 했고 너 자신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패배감에 매몰되어 의욕을 잃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많은 것을 하지 못해도 괜찮다. 조금이라도 무엇인가를 했다. 한발 물러났지만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명예로운 후퇴이다.
저마다 사정이 있을 수 있고 타고난 기질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런 것은 고려되지 않고 쉽게 패배감에 매몰되게 한다. 한정된 몇 가지 기준만을 생각하며 서로를 비교하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과 비교를 한다. 공교육 현장에서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투명인간이 되는 학생들이 있어 왔다. 또 업무 중 출산을 위해 한 발 물러나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겨왔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다른 이에게 ‘국평오(국민 평균이 수능 5등급이라는 뜻)’라는 말을 쓰며 한 사람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국민 대다수를 패배자로 만들어 버린다.
주입식 교육이 문제라고 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주입 받으며 자라났나. 승리와 패배의 선 가르기, 패배자를 배척하는 것, 한 방향으로 달리지 못하면 패배감을 느끼는 것을 주입 받아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