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먹는 인간 행위의 발전 단계는 ‘악식의 시대-폭식의 시대-미식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악식의 시대는 먹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이때는 무엇을 먹고 왜 먹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든 먹음으로써 생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악식의 시대였다. 모든 문명의 우선적인 과제는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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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사진은 새해 음식인 떡국. 국제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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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에서 식량의 절대량 부족이 해소되면 폭식의 시대로 접어든다. 이때가 되면 다양한 현상이 벌어진다. 우선 배고팠던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 맹렬하게 먹는다. 음식은 배고픔이라는 본능을 넘어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대상으로 바뀐다. 덕분에 폭식과 과식이 난무한다. 먹지 못해 생겼던 질병 대신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질병이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그리고 무엇을 먹느냐가 계급과 계층을 나누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정착되면서 식품산업과 외식산업이 급속히 성장한다. 바야흐로 먹거리의 주도권이 국가에서 자본으로 넘어간다. 한국인은 지금 전형적인 폭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폭식의 시대가 고도화되면 사회 내부에서 분화가 일어난다. 음식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부류가 등장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 내가 먹는 음식은 어떤 식재료로 만들어졌고 어떤 환경에서 획득한 것인가? 내가 먹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기준으로 음식을 선택한다.
미식의 시대에 음식은 생존과 욕망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수단이 된다. 19세기 독일의 과학자 칼 포크트와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어바흐는 이미 150여 년 전에 이를 예견했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이란 그가 먹는 것이다”는 명제를, 포크트는 “인간이란 그가 먹는 대로 된다”는 명제를 각각 남겼다. 비록 유물론적 관점이긴 하지만 결국 먹는 것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이 명제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좀 더 확장시키면 한 사회의 수준 역시 그 사회가 소비하는 음식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미식의 시대는 이처럼 사회 전체의 변화가 아닌 개개인의 각성으로부터 출발한다. 공간이 삶의 질과 형태를 규정하듯 먹거리 역시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보편화된다. 얼마나 잘 먹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가치 있게 먹느냐는 문제로 패러다임이 바뀐다. 미식의 시대에 먹거리의 주도권은 국가나 자본이 아닌 개인에게로 넘어온다. 사회의 변화가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 모여 사회의 변화를 견인한다.
따라서 미식의 시대에 개인은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소비자로 바뀐다. 미식을 고급스럽고 값비싼 음식을 먹는 행위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근대의 관점이다. 음식을 선택하고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올바름과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현대적 관점에서 미식의 의미다. 그래서 미식을 추구하는 개인은 자신이 먹는 음식의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식재료가 재배되거나 획득되는 과정이 안전하고 친환경적인지 살피고, 가공 및 유통 과정이 위생적이고 합리적인지를 따진다. 이런 소비자들이야말로 진정한 미식가라 할 수 있다.
2023년 계묘년에는 독자 여러분 모두 미식가가 되시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