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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유럽인 듯 아닌 듯

  • 강필희 기자 flute@kookje.co.kr
  •  |   입력 : 2022-12-27 19:56:39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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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1870~1924)의 모습을 보면 검정색 머리카락, 찢어진 눈매, 돌출된 광대뼈 등 전형적인 러시아인과 거리가 있다. 실제로 레닌은 유럽과 아시아 혈통이 뒤섞인 혼혈인이다. 그중에서도 징기스칸 피가 흐름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가 몽골 음료인 밀크티를 능숙하게 끓여내는 모습에 몽골인 동지가 놀라자 “우리 할머니는 칼미크인(몽골)이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13세기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서 세계 최대 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은 이후 원나라, 차가다이칸, 일칸, 킵차크칸 등으로 분열되는데 이중 킵차크칸이 오늘날 러시아다.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불가사의 속 신비에 싸인 수수께끼”라고 표현한 나라가 러시아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세계의 복합적인 감정은 ‘루소포비아’(Russia+Phobia)라는 단어에 응축돼 있다. 포비아는 공포 혐오 멸시 등을 통칭한다. 러시아 영토는 아시아 73%, 유럽 27%로 아시아 쪽이 훨씬 많다. 그러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같은 주요 도시가 우랄 산맥 서쪽인 유럽에 치우쳐있고 인구 90%가 거기 산다. 주요 인종인 슬라브족도 백인 계열이다. 유럽인은 러시아가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인종 유사성도 높지만 늘 뭔가 꺼림칙했다. 같은 기독교이지만 유럽은 로마 가톨릭, 러시아는 동방정교에 뿌리를 둬 이질감이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퇴출된 러시아가 아시아축구연맹(AFC) 가입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축구협회(RFU)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언급하면서 논란은 촉발됐다. 러시아는 올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 등 각종 스포츠연맹에서 사실상 영구 제명됐다. 카타르 월드컵은 유럽 예선 도중 참가금지 처분을 받았고 2024 유럽축구선수권대회는 조 추첨에서 배제됐다. 러시아의 AFC 가입은 RFU, UEFA, FIFA 등 승인을 차례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주요 결정권을 쥔 FIFA가 동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구소련 붕괴 이후 강도가 줄어드는 듯했던 서방 경계심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다시 짙어졌다. 이 전쟁 탓에 10만 명 이상 희생됐고 핵충돌 우려도 높다. 원자재와 곡물 가격 폭등 때문에 전쟁과 직접 관련이 없는 우리나라까지 큰 피해를 본다. ‘러시아가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러시아 국민조차 끊임없이 자문하는 물음이다. 분명한 건 전쟁이 계속되는 한 러시아는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는 점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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