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청년의 소리] 애도의 출발 그리고, 행동하는 애도

정서원 협동조합고치 이사·청년월동기지 니트플레이스 매니저

  • 정서원 협동조합고치 이사·청년월동기지 니트플레이스 매니저
  •  |   입력 : 2022-12-18 19:28:22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0·29 참사 다음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방문 너머로 ‘어떡하노…’ 부모님의 연이은 탄식이 들려왔다. 뉴스 소리에 휴대폰을 켜고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포털사이트, SNS에 올라온 글들을 한참을 반복해서 본 후에야,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구나’ 인지되기 시작했다. 그날은 청소년 아이들을 위한 핼러윈 특별행사가 예정되어 있던 날이라, 빠르게 동료들과 논의하고 핼러윈이 없는 기획으로 전면 수정하기 시작했다. ‘나도 믿기지 않는 이 일을, 아이들에게는 무엇 때문이라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여러 의미로 마음이 착잡했다.

이날 이후로 수많은 뉴스기사, 거리에서 ‘애도’라는 단어를 만났다. ‘애도’ 꼭 필요하고, 마땅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마냥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애도’는 ‘침묵’의 동의어가 아닌데, 타자를 향한 마음이 존재한다면 ‘애도’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뤄질 수 있는 것일 텐데, 마땅히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과 같이 이야기되는 말들이 불편하게, 또 어렵게 다가왔다. 마음을 충분히 전함을 실천하기도 전에, 조심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사람들이 퇴근할 무렵의 시간, 서면에서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려 지하철에서 내리던 순간이었다. 폐쇄된 지하철 역사 공간, 갑자기 밀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에 불안함이 몰려왔다. 10·29 참사 당시 SNS에서 보게 되었던 장면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사진들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면 괜찮았을까?’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지만, 나의 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사고 현장을 보고 난 트라우마는 ‘일상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믿게된 후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서서 잠깐 멍하니 쉬어간 후에야,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제대로 꺼내지지 못한 채 스며든 불안은 일상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또 일주일 뒤, 고치 식구들 사이에서 CPR 교육을 진행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CPR 교육이란 말 그대로, ‘행동하는 애도’를 의미했다. 더불어 개개인이 스스로 소화해야 했던 참사의 아픔을 꺼내어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다. 길을 잃다 방향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일주일 안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상상, CPR 교육’ 사명을 가지고 교육을 진행한다는 간호학과 교수님들, 도움이 될 수 있어 감사하다는 CPR 기계 업체 대표님, ‘위급상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이야기하는 참여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 속에, 이미 애도는 시작되었다.

11월 중순, 고치가 운영하는 두 곳의 공간(프린체, 청년월동기지 니트플레이스)에서 ‘행동하는 애도’의 자리가 열렸다. 2시간 남짓한 동안, CPR 실습을 하며 목이 쉬고, 땀이 흐르고, 팔이 후들거려도 강사진, 참여자 모두에게서 지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내 눈앞에 누워있는 한 사람을 내가 살려낼 수 있을까, 아니 살려내야만 한다’에 대한 간절함만 존재할 뿐. ‘좋은 애도’란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마음을 다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내 앞의 타자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이렇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 저렇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 고민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좋은 애도란 존재하지 않았다. 정해진 애도도 없었다. 그저 마음을 다해,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만 존재하며, 내 마음은 깨끗하고, 진실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갖춰야 할 태도였던 것이다.

10·29 참사 이후, 50여 일이 지난 현재. 동료가 전해준 글을 다시금 떠올리며, 태도를 고쳐 잡아본다.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000명이 죽었다는 것을 ‘5000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000건 일어났다’가 맞다. (중략)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신형철 ‘인생의 역사’ 중에서.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국민연금 한 번도 못 낸 청년 21만명…10명 중 9명은 '실직'"
  2. 2[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3. 3[속보] 재커라이어, 나흘 만에 경질.. ‘역대 최단 기간’ 백악관 대변인
  4. 4[속보] 추미애 “순직 소방관께 깊은 애도, 근무 환경 살피겠다”
  5. 5부천 공장 화재 순직 소방관 장례 '경기도청장'으로 엄수
  6. 6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7. 7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1.2원 ↓
  8. 8‘부산살이’ 한 달 된 부캉이…주말 북항 친수공원 인파 몰려
  9. 9[속보] 다카이치 총리, 야스쿠니 가을 제사 공물 봉납
  10. 10"통합 앞둔 발전5사, '8020억 자회사 부채' 승계계획 전무"
  1. 1[속보] 추미애 '소방 재정 빨대' 발언 사과…“폄훼 의도 없어”
  2. 2김민석, '재정 빨대' 발언 사과... "추미애에게도 사과 요청했다"
  3. 3[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4. 4[속보] 김민석 "'조희대 탄핵 추진' 논의 공식화"
  5. 5이 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담아내야" 국회에 개헌 논의 촉구 (종합)
  6. 6이헌승 "국제신문 실질적 대주주 조사 미흡" 질타에 부산노동청장 "다음주 면담"
  7. 7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8. 8李대통령 지지율 39%, 하락세 멈췄다…민주 36% 국힘 27%
  9. 9李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수록 개헌, 국회가 나서달라”
  10. 10李대통령, 부상 소방관·장병 쾌유기원…“천금 준들 아깝겠나”
  1. 1"국민연금 한 번도 못 낸 청년 21만명…10명 중 9명은 '실직'"
  2. 2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1.2원 ↓
  3. 3"통합 앞둔 발전5사, '8020억 자회사 부채' 승계계획 전무"
  4. 4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5. 5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6. 6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7. 7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8. 8부산 9월 취업자 9000명 늘었지만…'경제허리' 40·50대 3만명↓
  9. 9‘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10. 10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1. 1[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2. 2[속보] 추미애 “순직 소방관께 깊은 애도, 근무 환경 살피겠다”
  3. 3부천 공장 화재 순직 소방관 장례 '경기도청장'으로 엄수
  4. 4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5. 5‘부산살이’ 한 달 된 부캉이…주말 북항 친수공원 인파 몰려
  6. 6제자 성추행한 초등 교사에 기부금 전달한 전현직 교사 '불구속 송치'
  7. 7"뉴스거리 만들려 범행" 인천 흉기난동범 최충락 주거지 압수수색
  8. 8이태원 참사 유족, 4주기 앞두고 진상규명 촉구…"책임자 처벌" 외치기도
  9. 9부천 공장 화재, 금속 세척 작업 중 '유증기 스파크 발화' 추정
  10. 10통영서 단체 수영하던 50대, 1.8㎞ 표류…해경 구조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귀 기울일 것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은정이라는 이름
다시 영화의 시간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초대 중수청장, 내편 네편 아닌 국민편에 서라
지자체, 현수막 법 준수하고 실태부터 파악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