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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현장] ‘탈아시아급’ 일본, 인정할 건 인정하자

  • 이병욱 기자 junny97@kookje.co.kr
  •  |   입력 : 2022-12-14 19:41:25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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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를 논함에 있어 일본은 늘 빠지지 않는 ‘상수’다. 대부분 종목에서 ‘한일전’은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만 축구를 따라올 수는 없다. 우리 국민 머릿속에 ‘야구는 몰라도 축구는 우리가 한 수 위’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 이번 카타르 대회를 포함, 11차례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반면 일본은 7회로 여전히 격차가 크다. 월드컵 최고 성적도 이번 대회 전까지 우리는 4강이지만, 일본은 자국에서 열린 대회를 포함해 16강에 세 차례 오른 것이 최고였다. 역대 A매치 전적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42승23무16패로 절대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런 결과만 놓고 보면 일본 축구를 한 수 아래로 보는 시선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많은 이들의 생각은 달라졌을 법하다. 태극전사들이 사상 두 번째 ‘원정 16강’이라는 대업을 이룬 것을 결코 폄훼할 생각은 없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자세로 투지를 보여준 우리 대표팀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일본이 보여준 경기력은 라이벌인 한국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탈아시아급’이었다. 성적에서도 한국을 넘어섰다. 일본은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2개 대회 연속 16강에 올랐고, 한국(6승)을 넘어 아시아 본선 최다승(7승)도 달성했다. 냉정하게 이젠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는 입장이다.

이처럼 일본이 한국을 추월하고 ‘월드 클래스’에 가까워진 것은 결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다. 장기적인 시스템 개혁의 결과물이다. 일본축구협회는 2005년 일본축구의 철학을 담은 ‘일본의 길(Japan’s Way)’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대표팀 강화 ▷유소년 육성 ▷지도자 양성 ▷축구 보급 등 4개 항목으로 구성됐는데, 최종 목표는 ‘2050년까지 축구 인구 1000만 명 확보, 그리고 월드컵 우승’이다.

일본 선수들은 세밀한 실천 방안이 담긴 ‘일본의 길’에 따라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성장했다. 일본축구협회, J리그, 구단은 ‘삼위일체’가 돼 선수들의 해외 진출에 집중했다. 이번 대회에서 일본은 최종 엔트리 26명 중 19명을 ‘유럽파’로 채웠다. 벤투호(8명)의 배가 넘는 숫자다. 이들 해외파 선수들은 우승 후보 독일과 스페인을 연달아 꺾은 뒤 “유럽에서 뛰던 대로 했다”고 했다. 예전 일본 선수들에게서는 보지 못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일본이 이처럼 많은 해외파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 유명 클럽의 유소년 시스템을 적극 수용하고, 독일 뒤셀도르프에 유럽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를 구축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축구협회의 뒤셀도르프 오피스는 유럽 각 클럽과 일본 선수들을 연결해주고, 교섭도 돕고 있다. 현지에 진출해 있는 일본 기업들은 이들의 든든한 ‘스폰서’ 역할을 맡는다. J리그 구단들은 이적료를 대폭 낮춰 자국 리그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

한국이 일본이 갖춘 자본과 선수층을 따라가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이 추구하는 ‘국제 경쟁력 갖추기’와 ‘선진 시스템 도입’은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항상 국제 대회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과 비교해 한국의 노력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대표팀 미드필더 황인범은 “일본과 같은 16강이라는 성적을 냈다고 해서 우리가 일본 만큼의 환경을 갖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는 것 같다. 많은 부분에서 아쉬운 게 사실”이라고 작심 비판했다.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19세기 말 일본이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추진해 열강의 반열에 오른 반면, 우리는 아픈 역사를 겪어야 했던 상황이 떠오른다.

라이벌을 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조건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우리도 이젠 일본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 축구가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러 있는 사이 일본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사상 두 번째 원정 16강의 기쁨은 오롯이 간직한 채 한국 축구 미래 100년을 위해 치밀하고도 체계적인 ‘마스터 플랜’을 준비할 때다.

이병욱 스포츠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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